상식을 가진 사회 구성원이라면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대중을 상대로 영업하는 기업이 특정 역사적 비극을 조롱할 의도를 담아 상품이나 마케팅을 기획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내놓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가능성과 현실은 다르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다.
최근 한 기업을 둘러싼 논란은 여러 정황이 겹치며 급속도로 확산됐다. 일부에서는 특정 문구와 상품명, 공간 구조 등을 연결해 역사적 사건을 의도적으로 희화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는 해당 기획이 특정 역사적 사건을 조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반면 논란이 된 기업 역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회사는 논란 이후 공식 사과와 함께 관련 프로모션을 중단하거나 수정했고, 내부 검수 과정의 미흡함을 인정했다. 고의 여부와는 별개로 대중과 소통하는 기업이라면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지닌 시기와 표현에 대해 더욱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실 확인 이전에 결론부터 내리는 태도다. 일부에서는 기업의 고의성을 기정사실화하며 강도 높은 비난과 불매운동을 촉구했다. 반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모든 문제 제기를 과도한 정치적 해석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건강한 공론장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역사는 우연과 오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사례를 수없이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여러 정황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의혹은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지만, 의혹만으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나 과격한 목소리를 마치 지역사회 전체의 생각인 것처럼 일반화하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다. 5·18의 아픔을 기억하는 방식은 결코 증오와 공격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광주시민을 비롯한 많은 국민은 역사적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합리적 판단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 집단의 과격한 주장만을 지역 정서인 양 확대 해석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할 일이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고, 시민은 그 책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과정 역시 사실과 증거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추정만으로 누군가를 단죄하는 순간, 공정한 비판은 여론재판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번 논란이 남긴 교훈은 특정 기업을 무조건 비호하거나 무조건 단죄하는 데 있지 않다. 의혹은 제기할 수 있지만 판단은 검증을 통해 내려져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다.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집단적 분노가 아니라 냉정한 사실 확인이다. 기업은 더 세심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고, 시민은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해야 한다. 건강한 공론장은 그 균형 위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
유진채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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