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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중대본, 3시 180명 구조·290명 실종 발표 변경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 477명이 탄 여객선이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서 침몰했다. 이들 중 여성 승무원 1명과 단원고 학생 1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오후 1시30분 여성 선사직원 박지원씨와 안산 단원고 2학년 정차웅군이 숨지고 368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후 3시 180명을 구조하고 290여명이 실종됐다고 수치를 변경했다. 중대본에 나와 있는 해양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선체 대부분이 수면 아래로 잠겼으며 뱃머리 끝 일부만 보이는 상태다. 부상자는 중상자 7명을 포함 27명이 인근에 있는 한국병원, 목포한국병원, 해남종합병원 등에 분산돼 치료를 받고 있다. 6825t급 청해진 소속 여객선 세월호는 오전 8시 58분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수중이라는 신고를 접수했다. 세월호는 전날 오후 9시께 인천여객터미널을 출항해 제주로 향하는 길이었다. 여객선에는 3박 4일 일정의 수학여행길에 오른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교사, 승무원 등 모두 477명이 탔으며 차량 150여대도 싣고 있었다. 배에서 공연하는 필리핀 여성 가수 2명도 승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접수 뒤 해경과 해군, 서해어업관리단, 민간인 등이 40여척의 어선과 경비함, 헬기 등을 동원해 구조에 나섰다. 해경은 목포항공대 소속 헬기와 경비함정 16척을 동원했다. 해군도 유도탄고속함 1척과 고속정 6척, 해상초계가 가능한 링스헬기 1대를 투입했다. 구조된 승객들은 침몰 전 '꽝'하는 소리가 난 뒤 배가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해 2시간여 만에 완전히 침몰했고, 배가 거의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기울어질때쯤 "뛰어내리라"는 선내 방송에 따라 대부분 뛰어내렸다고 밝혔다. 승객들은 '꽝' 소리가 암초에 부딪혀서 발생한 소리인지, 선체 내부에서 발생한 소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1994년 건조된 세월호는 길이 146m, 폭 22m 규모의 여객선으로 여객 정원 921명, 차량 15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를 동시 적재할 수 있는 대형 카페리다.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는 지난해 2월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돼 현재 주 2회 왕복운항하고 있다. 15일에는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이 지연돼 예정 출항시각보다 2시간여 늦은 오후 9시께 인천에서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04-16 15:38:29 김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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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 침몰…292명 사망한 서해훼리호 악몽 재연되나

제주도 수학여행에 나선 고교생 등이 탄 여객선이 16일 오전 전남 진도 해상서 침몰했다. 사고 직후 해경과 경찰·소방본부 등이 합동 구조작전을 펼치고 있다.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 학생 324명과 교사 14명, 승무원 30명과 일반 승객 등 모두 477명이 탑승했다. 역대 대형 여객선 사고를 모아봤다. ◆남영호 침몰 사고 1970년 12월14일 오후 4시께 승객 338명을 싣고 제주 서귀포항을 출항한 여객선 남영호는 부산항으로 항해하던 중 다음날 오전 1시50분께 대마도 서쪽 100㎞ 해상에서 전복돼 침몰했다. 이 사고로 326명이 숨졌다. 선체와 화물 등 모두 1억700만원의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적재량을 초과한 과적, 항해 부주의, 긴급신호 발신 후 신속하지 못한 대처 등으로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극동호 화재 사고 1987년 6월16일 오후 2시50분께 경남 거제군 남부면 다포리 '솥뚜껑' 해상에서 관광객 86명을 태우고 해금강 관광에 나섰던 24t급 목조유람선 '극동호'가 화재로 침몰했다. 사고 원인은 기관실 엔진 과열. 이 사고로 관광객 27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당시 사고 유람선의 기관사는 무자격자였으며, 엔진고장이 잦아 한 달 새 5차례나 정비를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 당시에도 엔진 과열 상태에서 고장이 발생했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고 1994년 10월24일 오후 4시15분께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앞 충주호를 지나던 54t급 충주호 유람선에서 엔진과열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정원이 127명인 이 유람선에는 승무원을 포함해 134명이 타고 있었다. 정원을 초과한 채 운항한 것이다. 여기에다 유람선 안에 화재 진압용 소방정이 없었으며 구명조끼도 정원수만큼 갖추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로 30명이 숨지고 33명이 부상을 당했다.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3년 10월10일 오전 10시10분께 낚시꾼 등 326명을 태우고 가던 서해훼리호가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출항 당시 파고가 2~3m로 좋지 않았으나 무리하게 출항했다가 너울파도에 배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정원이 221명이었던 서해훼리호에는 모두 362명의 승객이 탑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구명조끼 등이 모자라 희생자가 크게 늘었다. 이 사고로 숨진 사람은 모두 292명이다. 특히 이 사고는 안전불감증 탓에 발생한 전형적 인재로 손꼽힌다.

2014-04-16 15:37:19 조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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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코노미] "대나무 숯 땅콩 주세요"

플라스틱 제품에 떠밀려 설 자리를 잃었던 대나무 제품들이 대만에서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다. 단순한 죽제품에서 벗어나 참숯 양말과 건강식품 등으로 획기적인 변신에 성공한 덕분이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 문화권에서도 대나무는 반듯함, 견고함, 강인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대나무로 만든 제품들은 특유의 매력으로 오랜 세월 중국인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도시화·현대화 바람이 불면서 대나무 제품을 찾는 사람은 급격하게 줄었다. 과거에는 뗏목이나 지붕, 신발과 가구, 농기구 등을 만드는 데 대나무가 사용됐다. 하지만 사람들이 도시적인 느낌이 나는 소재를 선호하고,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에서 저렴한 대나무가 수입되면서 대만 대나무 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대나무 마을'로 불리는 난터우현 주산 지역의 피해가 가장 컸다. 이전에는 수백 가구가 대나무 제품을 만들었지만 현재는 50가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가 대나무 산업을 살리기 위해 뛰어들면서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1999년 난토우현을 뒤흔든 대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황폐해지자 정부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정부의 특명을 받은 대만 산업기술연구소(ITRI)는 신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특히 ITRI는 고품질의 대나무 숯과 섬유를 만들어 혁신적인 제품들을 선보였다. 샴푸, 방충제, 양말, 구운 땅콩, 바지 등은 과거 대나무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제품들이다. 이 가운데 최고 히트 상품은 땅콩 표면에 대나무 숯을 입힌 '숯땅콩'이다. 대나무 숯땅콩은 천연 웰빙 식품으로 시장에서 꾸준히 인기다. 1970년대 대만에서는 매년 대나무 1300만 그루를 수확했다. 연 매출은 350만 달러(약 36억450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10년 새 수확량이 167만 그루로 급감, 매출은 45만 6000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몇 년 간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에 매출은 겨우 증가세로 돌아섰다. 또한 '대나무 비즈니스'는 젊은 세대들이 가업을 물려 받으면서 한층 활기를 띠게 됐다. 린 리웨이(36)는 대학을 졸업한 뒤 타이페이의 우체국에서 근무했다. 한 달 월급은 600달러였다. 박봉으로 근근이 생활하던 린은 대나무 귀이개를 만들어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하는 부친을 돕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는 세련된 감각의 대나무 시계와 램프 등을 새로운 아이템으로 추가해 고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부자의 월 평균 수입은 약 5000달러다.

2014-04-16 15:36:14 조선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