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대 중반의 여인이 시를 배우는 교실에 단정히 앉아 시인에게 시를 묻는다. 어떻게 해야 시상이 떠오르느냐고. 어떻게든 시를 쓰고 싶어하는 여인의 눈빛은 맑고 간절했다. 시인은 “보라”고 말한다. 아무리 익숙한 것이라도 지금껏 보지 못한 것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리 보고 저리 보면서 느끼라고 차분한 어조로 이른다. 그 시인은 섬진강의 김용택이고, 그에게 물음을 던진 이는 한 시대를 매혹시켰던 청춘배우 윤정희.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의 한 장면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리 울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우는 사연이 속삭여지던 날이던가. 그립고 아쉬워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이 배우 윤정희는 세월은 어느새 스며들었으나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생활의 고단함을 드러내는 연기에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소소한 일상을 대하는 자세나, 극적인 치열함이 필요한 대목 그 어디에서나 그녀는 진지하고 혼신을 다했다. “연기는 살아온 인생만큼”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다시 문학소녀가 되고픈 영화 ‘시’ 속의 할머니 양미자가 된 윤정희의 본명이 손미자라고 한다. 이창동 감독은 그런 인생사까지 챙겨 주인공을 양미자로 만들었다. 애초부터 그녀를 염두에 두고 쓴 각본이라고 하니 당연하면서도 재미있다. 배우와 주인공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어 준 셈이다. 그런 그녀의 주름살은 나이를 먹으면서 가공되지 않은 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한때 화려했던 인기와 명성이 높은 예술가 남편, 그것만으로도 노년으로 접어드는 세월이 아쉽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마감이 이미 끝나버린 시문학 교실의 문을 두드려 자리에 앉은 양미자처럼, 배우 윤정희도 그녀에게 마감이 끝났다고 여길 만한 시간에 우리 곁에 돌아와 앉았다.
그러나 그냥 돌아온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양미자는 그녀의 외손자가 친구들과 함께 윤간한 한 소녀의 주검이 떠내려 왔던 강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시를 쓰기 시작한다. 어느 술 취한 젊은 시인이 내뱉은 말처럼 시가 죽은 시대에, 주검이 아닌 생명이 흐르는 강물같이 그녀의 가슴에 시가 태어나라고. 섬진강 시인이 보라고 한 것이 무엇인지 그제야 깨달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