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감독 겸 배우 데니스 호퍼는 1960∼70년대 미국 주류 문화에 대항했던 ‘아메리칸 뉴 시네마’를 대표하는 만능 재주꾼이자, 할리우드의 탕아로 악명이 높았다.
히피 정신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호퍼는 69년작 ‘이지 라이더’의 주연과 연출을 겸해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내 마약과 술의 늪에 빠져 할리우드의 ‘왕따’로 무려 10년 이상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그의 기행은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흥망성쇠를 파헤친 책 ‘할리웃 문화혁명’(피터 비스킨드 저)에서 적나라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온종일 약물과 술에 취해 권총을 휴대하고 다니며 아내를 비롯한 주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랬던 호퍼가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복권을 허락받은 시기는 80년대 말부터였다. 후배 영화인들의 부름을 받아 ‘블루 벨벳’과 ‘스피드’의 악역으로 화려하게 재기하고 나서부터는 원로 영화인으로, 미술품 수집가로 영화팬의 존경과 사랑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영화인을 이처럼 다소 장황하게 언급하고 나선 이유는 호퍼보다 나흘 먼저 쓸쓸히 숨진 채 발견된 고 곽지균 감독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86년 ‘겨울나그네’로 일약 청춘 멜로물의 거장으로 떠올랐던 고인은 2006년 ‘사랑하니까, 괜찮아’가 흥행에 실패한 뒤부터는 일감이 없어 매우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밀어닥친 한국 영화의 산업화와 대중의 바뀐 감성은 시대의 조류를 발 빠르게 따라잡지 못하는 곽 감독을 매정하게 따돌렸고, 이 과정에서 이방인으로 밀려나 결국 최후의 선택이나 다름없는 자살로 자신의 존재를 외부에 알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분야나 성공과 실패, 재기의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숙성된 작품 혼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문화예술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호퍼와 곽 감독의 상반된 말로를 지켜보며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