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인이 한 명씩 우리 곁을 떠날 때마다 천상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겠구나,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2월 배삼룡에 이어 백남봉이 하늘나라에 웃음을 안겨주기 위해 아주 먼 길을 떠났다. 그의 속사포 같은 입담과 뛰어난 성대모사를 아끼던 대중에게 크나큰 슬픔이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다.
고인은 여느 또래의 희극인들과 달리 말년까지 꾸준하게 활동해 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1990년대 중반 콩트 코미디의 퇴조와 함께 여러 중견 코미디언들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안방극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와중에 때로는 자신들을 매정하게 외면해버린 시청자들을 상대로 가끔씩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은 달랐다. 이름값을 자랑하는 중견 연예인이라면 약간 꺼려할 만한 아침 교양 프로그램의 리포터도 선뜻 받아들였다. 스튜디오와 무대를 떠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웃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은 오히려 전성기보다 더 많은 빛을 발했다.
후배 이봉원의 말처럼 가장 한국적인 1인 스탠딩 코미디의 개척자이기도 했다.
누구의 도움 없이 마이크 하나에 공력을 불어넣어 사람들의 배꼽을 빼놓는 재주에서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었다. 필생의 라이벌이자 가장 가까운 지기였던 남보원의 특징이 박력 있는 만담과 성대모사였다면, 백남봉은 여성스러우면서도 능청스러운 일인 다역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둘 다 미국식 스탠딩 코미디처럼 남을 비꼬며 웃기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바보로 만들고 가슴 찡한 여운을 남기는 능력이 탁월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영정 속의 백남봉은 생전의 모습처럼 환히 웃고 있었다. 부디 저 멀리에서도 변함없는 웃음을 전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