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狼狽)는 이리의 형상을 한 전설상의 동물. 낭은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두 개가 없거나 아주 짧다. 반면 패는 앞다리 두 개가 없거나 짧다. 이 때문에 낭과 패는 붙어 다녀야 한다. 만일 사이가 좋지 않으면 넘어지기 일쑤며, 고집을 부리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을 도모했을 때 잘 풀리지 않아 처지가 고약하게 꼬이는 경우 사용되는 이 말처럼 요즘의 청와대 기류를 대변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국무총리 및 장관 후보자 3인이 낙마한 인사청문회 후 폭풍은 임기 후반을 옭매는 족쇄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서둘러 진화에 나서기는 했지만 외교통상부 장관의 자녀 채용 논란은 설상가상의 악재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성공하려면 목표, 정책, 그리고 인사가 조응해야 한다. 공정한 사회가 목표라면 그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인물을 등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물 기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 적합한 인물을 인선하기도 어렵지만 인사청문회의 벽을 통과하기까지는 정치적 리스크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비대칭적으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 특히 국정 운영의 통일성, 능률성, 효율성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이전의 모든 정권도 이 같은 명분을 내세워 권력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권력이란 사람을 부리는 힘이며, 이 힘은 인사를 통해 구현된다. 국회가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두고 있음에도 유독 인적 통제에 무게를 두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선출직은 유권자가 선거과정에서 검증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적인 검증이다. 이 때문에 차악(次惡)도 살아남을 수 있다. 유권자는 주어진 대안 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에게는 능력과 전문성은 물론 일정 수준의 도덕성까지 요구된다. 일부에서는 도덕성 검증이 인사청문회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말까지 나온다. 도덕성은 ‘한 방’을 노리는 야당에게 더없이 좋은 소재 이전에 국민 정서가 요구하는 최우선 검증 항목이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고위 공직자 후보로 하여금 임용 이후의 정책적 소신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구상을 밝히도록 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국회는 행정 운영에 대한 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인 통제 준거를 갖게 된다. 그리고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책의 방향을 밝혀 놓았기 때문에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도입 취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대통령의 인선을 보다 신중하게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점을 전제한다면 이번 인사청문회 후폭풍은 대통령에게 상당 부분 귀착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사람보다 제도가 문제라는 지적도 한다. 대통령 단임제는 재선을 염두에 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색깔이 강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의중을 제대로 읽고 일선에서 실천할 인사에 등용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그룹의 오너 회장이 계열사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신의 의중과 경영 방침을 현장에 제대로 전파하기 위해 비서실 출신을 중용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국정 운영은 기업 운영과 메커니즘이 다르다.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는 도덕성의 잣대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핀트가 빗나갔다. 국민 역시 청빈거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민심이 인선의 현실적 기준이 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정권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파악해 결점이나 미비점을 메울 인물을 고르라는 것이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