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 지면에서 나는 SBS 수목극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이하 ‘내친구’)에 대해 ‘꽤 괜찮고 참신한 소재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대표적인 나쁜 예’라고 말했다. 1, 2회를 보며 느꼈던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내친구’는 호평 속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다시 봤다. 그래서? 재미있더라는 얘기.
싱겁지만 사실이다. 재미있었다. 확 빠져들어서 보게 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순간 몰입해서 보게 된다. 신민아의 ‘귀여운(혹은 귀여운 척)’ 표정에도 거부감이 덜어지고 이승기의 꼰대 같은 대사에도 피식거리게 된다. “동주 선생(노민우)이 그냥 고기라면, 대웅(이승기)이 너는 소고기야”라는 화제의 대사에는 무릎을 칠 정도였다. 그러니까 ‘내친구’는 어쨌든 홍자매의 드라마다. 생각해보면 ‘미남이시네요’의 뻔한 판타지에도 설득력을 부여한 작가들이 아닌가. 확실히 드라마의 전제조건은 현실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건 한 번에 보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신의 감을 확신하는 건 중요하지만 과신하면 곤란해진다. 첫인상을 보고 ‘그 사람은 그럴 것이다’고 말해버리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고정된 생각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친구’는 이 연애 판타지를 ‘관계’와 ‘차이’에 대한 메타포로 치환하며 시청자를 설득한다. 구미호와 차대웅의 연애를 기대하지만 그 둘이 결국 맺어지지 못하리라는 것도 예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에 개입하는 차이(사실 현실의 모든 문제들은 거기서 오는 것이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내친구’를 보면서 내가 보인 반응이다. 이건 개인적인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이걸 보면서 경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요컨대 무언가에 대해 섣부르게 말하지 않는 것.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 것. 누군가, 그게 드라마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훨씬 더 수긍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 일로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성해야 하는 법이다. 그걸 멈춰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딸을 위해 공적인 룰을 바꾸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인간이 되고 만다.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그걸 여기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