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설명할 수 없고, 뭐라 말할 수 없어. 통제할 수 없는 느낌.”
심사위원이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묻자 빌리는 그때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고 애쓰며 노래한다. 음악이 바뀌고 발레 동작을 취하면, 순간의 정적. 빌리는 자신이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를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준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Electricity’에 해당하는 장면은 원작인 영화에서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영화에서는 영상과 대사로 표현하던 것을 뮤지컬에서는 노래와 춤이 결합해 정서적 공감대를 높인다.
2000년 영화로 먼저 선보인 ‘빌리 엘리어트’는 1980년대 대처 시대의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다. 파업 중인 광부의 아들인 빌리가 발레리노를 꿈꾸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파업이라는 사회적인 갈등과 그러한 환경 속에서 키워 가는 소년의 꿈을 충돌시키고, 그 꿈을 응원하는 가족들의 사랑, 넓게는 마을 공동체의 연대를 따뜻하게 그려내면서 한편으로는 공권력에 무력하게 무너져 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원작의 다양한 함의를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뮤지컬 어법을 충실히 따른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등장한 영화가 원작인 뮤지컬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영상 언어를 무대 언어로 치환해냈다. 작품의 스토리와 드라마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지만 춤과 노래를 도구 삼아 그려내는 뮤지컬은 영화와 같으면서도 새롭다.
엘턴 존이 만들어낸 노래는 노동가요처럼 단순한 멜로디에 강한 의지와 다짐이 엿보인다. 그의 노래는 작품 적재적소에 사용되면서 드라마적으로 감성을 높이고 영화보다 부각된 엄마에게 존재감을 부여하는 데도 기여한다.
피터 달링의 안무는 발레를 소재로 한 작품의 매력을 백분 활용하면서도 드라마적인 깊이를 더해준다. 영화에서 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장면은 앵그리 댄스를 추는 장면 이외는 없다.
마지막에 성인이 된 빌리가 메슈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으로 도약하는 것이 제대로 된 춤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었다. 피터 달링은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장면을 극 중반으로 가져와 성인 빌리와 어린 빌리가 추는 2인무의 드림댄스로 만들었다. 플라잉을 동원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상의 감동을 준다.
일상 속에 경찰력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현실은 뮤지컬에서는 발레 수업 장면과, 경찰과 노동자들이 대치하고 있는 장면을 하나의 공간 안에서 앙상블을 이뤄내는 것으로 표현한다. 무비컬의 모범적인 교본이다.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