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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유통일반

비껴간 인연에 깊은 회한

[책 읽어주는 여자]

간밤에 이불을 걷어차 배를 내놓고 잤더니 아침부터 코끝이 맹맹하다. 고개를 무심코 돌리다가 볼을 만지는 부드럽고 찬 바람을 만났다. 목울대가 바르르 떨리면서 와락 반가운, 가을이다. 어김없이 내가 집어드는 책은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다.

세상에 인연이 아닌 것은 없다. 악연과 필연, 우연도 죄다 인연이고 보면 나 아닌 모든 것은 인연이다.

성장하고 청춘을 보내면서 해를 잇다 보면 조금 각별한 인연들을 만난다. 생각하면 눈가가 촉촉해지고 제 값 다 못 치른 것처럼 찜찜한, 못내 아쉬운 인연들은 신기하게 가을에 달겨든다. 태양열에 달궈진 산하가 가을 이슬에 식어 갈 즈음 공기가 순환하면서 눈가가 서늘해지고 심장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이기심을 머뭇머뭇 풀어놓고 남보다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거다. 내 안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그때 왜 그랬는지, 나는 왜 번번이 후회할 짓을 하고 마는지, 뭐 이런 돼먹지못한 고집을 부리는 건지 한숨을 쉬고 타박한다. 이상하게 가을엔 내 허물에 관대해진다. 무려 관대하다 못해 애틋해진다. 가을은 헛점투성이고 상처에 예민한 자신을 가장 보듬고 사랑하게 되는 계절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초가을 문득 엄습하는 회한의 핵심은 역시 사람이고 인연이고 정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 이후 수년이 흐른 어느 날, 사루비아가 시들어가는 9월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다. 읽으면서 가슴을 덮고, 읽으면서 가슴에 묻었던 구절들.

“아, 이쁜 집! 우리 이 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뾰족 지붕에 뾰족 창이 있는 2층집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던 어린 아사코는 알 수 없이 굽이치는 인생의 여울목을 몰랐으리. 아직 젊었던 선생도 아스라한 기대를 품었으리.

인연의 반전은 비껴가는 데 있다. 내가 아무리 먹먹한 기분으로 가을의 노을 앞에 서 봐야 나를 비껴가고 내가 비껴간 인연은 도로 내 앞에 놓여지지 않는다. 알았다면 노력했을 것이다. 친구건 연인이건 동료건 이토록 아쉬워질 줄을 그때 알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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