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8·29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냉기류는 지속되는 양상이다. 현재의 상태로만 보면 캠퍼주사의 효과도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과정일까.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버블은 무한히 지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버블을 판단하는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점. 여기에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이며, 또한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블을 의심할 심정적 근거는 많다. 집값이 땅값과 건축비 대비 2배 이상인 경우, 시세 대비 전세가격이 30%를 밑도는 주택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경우가 바로 그것. 오를 만큼 올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호가가 계속 뛸 경우, 빈집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집값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현상이 지속되는 경우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재테크 수단보다 부동산에 매달려 왔다. 내 집 마련에 대한 집착 등 정서적 요인, 그리고 부동산 불패에 대한 오랜 믿음 때문이다. 한 방을 통한 대박의 꿈은 부동산 공화국이란 오명을 만들어 낸 계기가 됐다. 가만히 앉아서 10년 이상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불과 1∼2년 만에 버는 사례가 많았던 것.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부동산 시장 특유의 정보 비대칭성과 ‘묻지 마’ 투자로 대변되는 감성 편향 때문이다. 특정한 사람이 개발에 대한 정보를 먼저 입수하고, 투자수익에 대한 해석 능력까지 갖게 되면 돈 벌기는 손 짚고 헤엄치기다. 또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너도나도 시장에 달려들면 부동산의 내재가치와 시장가격 괴리가 갈수록 커져 폰지 게임의 양상까지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구입가격보다 높게 팔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거품이 잔뜩 낀 가격,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빚을 내서라도 주택을 구입하게 된다는 것. 폰지 게임은 더 높은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지속된다. 하지만 더 이상 높은 가격에 팔리지 않게 되면 막차를 탄 사람은 폭탄을 맞게 된다. 최근 하우스 푸어가 양산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메커니즘의 결과물이다. 자산가치의 하락과 대출이자에 대한 부담 가중으로 집 가진 빈자(貧者)의 신세가 되는 것.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는 지난해 9월 시행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의 확대, 대규모 보금자리주택 보급, 그리고 버블 붕괴론을 앞세운 반(反) 시장 세력의 공포감 조성이 집값 하락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옹색한 느낌이다. 오히려 국내 부동산 시장은 주택대출 340조원 위에 쌓아 올린 거품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버블 상태에 있다면 앞으로 2가지의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연착륙을 하면 좋겠지만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폭발적으로 진행되는 디버블링 프로세스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집값 급락→금융기관 담보가치 하락→금융기관 부실 및 신용경색→가계 파산·기업 부도·투자 위축→집값 급락의 악순환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IMF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대책을 또 다른 부동산 경기 부양이라며 50%까지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에 대한 해법은 붕괴가 아닌 해소, 즉 연착륙 유도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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