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의 몸 하반신은 물고기 꼬리일 뿐이다. 그런 모습으론 지상에서 사랑하는 왕자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 그래서 마녀에게 찾아간다. 아름답고 착한 인어공주가 그런 일을 하다니.
그러나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는 인어공주는 마녀의 묘약을 마시면 다리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이젠 다된 걸까? 아니다. 다리가 생겨도 지상을 밟을 때마다 칼을 딛고 선 듯한 고통과 피가 흐르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단다. 그뿐 아니었다.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다리를 만들어 줄 테니 그녀의 목소리를 달라고 한다. 인어공주의 목소리는 바다궁전에서 가장 빼어나게 곱고 누구나 반할 정도다. 그러나 인어공주는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희생시킨다. 마녀는 인어공주의 혀를 자른다. 잔혹한 장면이다.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이렇게 말한 셈이다. 미모의 힘을 주겠다. 그러나 그 미모를 갖추려면 고통의 과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가? 그에 더해 너의 존재 자체이기조차 했던 목소리를 내놓아라. 인어공주는 그 목소리로 왕자에게 사랑의 진실을 알릴 수 없어서 왕자와의 사랑에 실패한다.
아니, 그 침묵 속에 담긴 사랑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왕자의 둔함에 비련을 겪는다. 다리가 생긴 목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여성의 미모는 권력이 되고 있다. 계급도 결정한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이 권력과 계급의 힘을 얻기 위해 묘약을 주는 성형시장으로 나간다. 그곳은 미모로 획득하게 될 부와 신분과 위상을 약속해주나, 그 과정은 칼을 몸에 대어 피를 흘리는 절차를 요구한다. 그리고 본래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외과적으로 수정과 편집을 거친 얼굴과 몸매는 치명적 매력을 뿜어낼 운명의 여인 ‘팜므파탈(femme fatal)’을 노린다. 그러나 본래의 자기는 어디에 있는 걸까?
자본주의 시장의 막강한 힘은 그 약속을 믿는 자에게 ‘아름다운 다리’를 약속한다.
그러나 치뤄야 하는 대가는 간단치 않다. 모두들 인어공주의 딜레마에 빠진다. 만들어진 모습으로 해서, 정작 자기가 누구인지 증언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대가도 대가 나름 아닐까? 나를 진정으로 지켜낼 수 있는 선택, 그로써 소멸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가 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너무 쉽게 묘약의 힘을 믿을 일이 아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