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홀가분해요.” 지난봄 세계선수권대회로 시즌을 마감한 ‘피겨여왕’ 김연아의 첫마디였다. 도대체 홀가분하다는 감정이 뭐기에…. 최근 이 ‘홀가분’이라는 단어를 간판으로 내건 심리카페가 문을 열었다. 이 곳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46) 박사의 작품이다. 정 박사는 “사람이 무언가를 가졌을 때보다 모든 걸 내려놓았을 때 더 큰 기쁨을 얻는다”며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홀가분”이라고 정의했다.
◆문턱 낮춘 심리 놀이 공간
기업 CEO나 임원들의 심리 상담을 주로 해 온 그는 그동안 대중적인 심리치료에 목말라 있었다. 우울하거나 고민이 있거나 속상한 일이 있는 누구나 가볍게 와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심리 놀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와 꾸준히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자기 자신을 바로 알면 사람 관계가 훨씬 편해져요.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지? 왜 그렇게 화를 냈지?’ 그 이유를 알면 다음부턴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거든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카페 ‘홀가분’의 문을 열면 바로 그림 에세이를 만난다. 카페 손님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여주기라도 하듯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심리상담이라면 거부감부터 느끼는 이들을 위해서다.
아늑한 조명이 깔린 카페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심리 궁합·관계 게임 등에 열중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의 상처와 분노를 위로받는 프로그램이 여럿이다. 가장 인기있는 건 ‘현재 나’의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주는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는 사람도 많다. 엄마와 온 딸도, 15년 지기 여고 동창생들도 그동안 막혀 있던 무언가가 소통되면서 ‘왈칵’ 눈물을 쏟아낸다.
“전 그냥 참지 말고 맘껏 울라고 해요. 눈물도 소통의 수단이자, 또 다른 대화 방법이니까요. 누군가 울 때 아무 말 없이 손수건 한 장 건네줘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각박한 생활 속 멘토 찾아야
카페를 처음 열었을 때 그는 회사 일에 지친 20∼30대 여성들이 주로 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0대부터 50대까지 카페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중년 남성들도 카페에 홀로 들어서는 것이 낯설지 않다.
“혼자 오는 30∼40대 직장 남성들이 꽤 많아요. 그만큼 힘들고 외롭다는 거겠죠. 남녀노소를 떠나 치유에 대한 욕구가 상당히 커졌다는 게 아닐까요.”
정혜신 박사는 일상 속에서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내 얘기를 바닥까지 할 수 있는 대상이 딱 한 명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견뎌낼 수 있어요. 그게 배우자·친구·형제 등 누구여도 상관없어요. 내 모든 걸 공유하고 자주 소통할 수 있는 ‘생활 멘토’를 만드세요.”
요즘엔 트위터 활동에도 열심이다.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심리 치유 처방전도 전한다.
“트위터에서는 강요가 없잖아요. 마음 내키면 내 감정을 내보일 수도 있고 귀찮고 힘들면 그만둘 수도 있는, 말 그대로 ‘홀가분한 공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