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과 출신인 주제에 정치와 시사에 유달리 관심이 없던 내가 최근에 일어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외교부 특채 사건에 꽤 신경이 쓰였던 것은 나 역시도 한때 외교관 자녀였기 때문이다.
공정성을 잃은 공직자의 부도덕함이나 가진 자들의 계급 세습 욕망, 부모의 빗나간 자식 사랑, 끼리끼리 돌봐주는 가족주의, 권위주의 체질 등 이 사태는 대한민국의 다양한 고질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는데 그중에서 특히 외교통상부 사람들의 폐쇄적인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일침이 눈에 걸렸다.
기사에 의하면 외교부 사람들이 가족처럼 서로 편의를 봐주는 것이 인지상정이 된 것은 해외 공관 근무 시절의 끈끈한 관계 때문이라고 했는데 끈끈했다는 것, 경험상 맞다. 타지에 살다 보면 단순한 직장 동료를 넘어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대사님’이 ‘할아버지’가 되어 세뱃돈을 나눠주었고 주중도 모자라 주말에도 모두 모였다.
외교관 자녀가 잦은 전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부분도, 맞다. 그 때문에 부모들이 죄책감과 동병상련을 느낀 것도, 맞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고충을 너희가 어떻게 알겠니”라고 나이브하게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너희는 모르는 나만의 힘듦’을 가슴에 품고 성장한 아이들의 고립감은 다행히 긍정적으로 풀리자면 ‘내가 나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견고한 자립심으로 이어질 수가 있었다. 사실 외교관 자녀가 흔히 부러움을 받는 외국어 실력보다 외국물의 진정한 특혜는 자신이 겪었던 문화권의 좋은 점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에 있다.
국제성은 거창한 게 아니다. 네가 가진 좋은 것과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서로 소개하고 교환하고 공유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유 전 장관이 전문가로서 근무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그 나라 자체를 구현시킨 이데아, 독립심일 것이다. 그 문화권처럼 자립과 독립에 대한 강박이 지나친 곳을 난 여태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런 큰 특혜를 등한시하고 이토록 외국물을 헛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슬프고 놀라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