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앞둔 새벽, 양로원이나 보육원 앞에 쌀 한 가마니를 몰래 놓고 가던 시대는 지났다. 장애인 시설에 가서 추석 선물을 안겨주고 사진 찍고 돌아가는 식의 자선도 줄었다.
불황 탓에 기부가 줄기도 했지만, 이보다는 사람들의 나눔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명절이나 연말연시의 ‘반짝 기부’ 대신, 일상적인 후원·기부 행위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19일 국내 사회복지기관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추석을 앞두고 기업 등 ‘큰손’의 후원은 예년보다 30∼5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 2급 중증장애아동이 생활하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쉼터요양원은 추석 명절 기간 후원이 예년보다 30% 정도 줄었다.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새 생명의 집’ 이정희 사무국장은 “기업과 관공서 후원은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며 “후원을 이어 가는 기업도 예전에 비하면 후원 물품이 50%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일선 복지시설에 대한 후원이 감소한 것은 우선 경기불황 탓이 크다. 사회복지시설은 경제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라 요즘처럼 물가는 치솟고 중산층의 소득이 늘지 않고 경기가 어려운 시기에는 시설에 답지하는 선물보따리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우리나라 기부 문화의 변화도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부 방식이 다변화하면서 과거처럼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집중적으로 자선을 베푸는 ‘반짝 기부’가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용카드와 온라인 계좌이체, 휴대전화 결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기기부를 받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올 추석을 맞아 소외계층에 생계비와 명절비용을 지원하는 ‘한가위 사랑 나눔’ 지원금을 지난해 54억원보다 29억원 늘어난 83억9000만원을 지원한다.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클로바노인요양원 박소영 원장은 “올해 추석을 앞두고 들어오는 후원물품은 줄었지만,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봉사해 주는 고마운 분들 덕분에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 사회복지봉사과 관계자도 “기부 문화가 확산되면서 추석·설 등 특정 시점의 시설 위문 실적은 감소하고 있지만 상시 기부는 상대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양정렬 사무국장은 “사회적인 추세가 상생·동반·나눔 등으로 변하다보니 정기적으로 후원·기부하는 방식의 나눔이 늘고 있다”며 “적은 금액이라도 정기적인 기부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