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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유통일반

공포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시론]

“나는 아브라함을 이해할 수가 없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공포와 전율’의 첫머리에서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불러낸다. 모리아 산에서 벌어졌던 살인미수 사건에 대해 추궁하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윤리적으로 고발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고, 종교적으로 변호하면 아버지가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려고 했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모순 속에서 갑자기 섬뜩한 공포를 느끼며 전율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시비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논란의 핵심을 윤리적으로 주장하면 생명으로 자라날 배아를 죽인다는 것이고,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난치병 환자를 치료할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명으로 자랄 가능성이 높은 배아를 죽여(?) 죽을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살린다는 키에르케고르 식의 ‘부조리’ 앞에서는 누구나 불안하기 마련이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살인범의 이웃은 으레 이렇게 말한다.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다 우연히 봤는데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이웃)

연쇄살인에 몸서리치는 이웃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유영철의 칼이 아니다. 나의 평범한 이웃이 언제 살인마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다.

공포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얼굴은 대개 무표정하지만 때로 웃거나 울고, 가끔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공포의 얼굴은 평범하지만 자세히 보면 일그러진 미소와 절제된 분노를 감추고 있다.

공포는 우리들 앞에, 옆에, 그리고 바로 뒤에 있다. 공포는 인적이 없는 깊은 산이나 으스스한 무덤이 아니라 주로 도시의 한가운데를 활보하고 있다. 공포는 주로 정치의 낡은 속옷을 입고 있으며, 가끔 과학기술이라는 첨단 유행의 겉옷을 걸치기도 한다.

공포는 지식의 아버지와 무관심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탐욕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모든 공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인간에게 익숙해진 일상적인 두려움에 지나지 않는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바로 이 모순 속에 사람들의 잠을 빼앗을 수 있는 불안이 있다. 이 불안이 없다면 아브라함은 그 아브라함이 아닐 것이다.”/동아사이언스 허두영 총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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