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광고를 보면 집단에의 소속감이라는 가치가 감성적인 형태로 자주 등장한다. 실제 생활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소속감에 굶주려 있다는 얘기다.
반면 일본의 광고는 개인주의, 자립 같은 것을 강조한다. 일본에서의 소속감은 일상적 삶에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소의 삶에 녹아 있는 가치와 정반대되는 가치를 의도적인 활동을 통해 충족코자 하는 것을 가치 역설(value aradox)이라고 한다.
5∼6년 전 ‘가족’ ‘태극기 휘날리며’ 등 가족주의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충무로의 최고 흥행 코드로 부상했던 것도 이 범주로 볼 수 있다. 명절이면 방영되던 TV 특집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 가족 구성원 간 갈등과 화해라는,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임에도 볼 때마다 눈물샘을 자극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족주의를 모티브로 한 영화나 TV 특집 드라마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돈을 들인 만큼 흥행을 올리지 못하거나 시청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게다. 또한 1970년대, 즉 산업화 1세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명절이 갖는 의미가 퇴색한 탓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산업화에 따른 이촌향도의 영향으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지방 출신이 많았다. 그들에게 고향이란 아련함의 대상이었고, 명절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 때문에 명절이 되면 자신이 살았던 집, 골목, 뒷동산, 그리고 앞개울을 찾아 성장의 추억을 더듬곤 했다. 조상의 묘는 자신의 원형질을 되새겨보고 친척과의 동질감을 회복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40∼50대의 중년인 그들의 자녀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의 행렬을 좆아 귀성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명절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이 명절 나기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갖게 하는 것. 특히 도시의 병원에서 태어나 아파트촌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와 아이들에게 고향이란 낮선 이미지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언론매체는 여전히 아름답고 화기애애한 추석 풍속도를 소개한다. 하지만 실상의 분위기는 다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바로 아내들이 겪는 명절 스트레스. 강도 높은 노동, 동서·시누이 등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으로 인해 높아진 스트레스 지수는 남편들 역시 곤혹스럽게 만들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친척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외형적 관계는 장유유서(長幼有序)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있고 없음, 즉 경제적 우열이 이 같은 관계를 우울하게 재편한다. 실제 연봉, 승진, 재테크는 보통의 샐러리맨 남편들에게 피하고 싶은 화제로 다가온다. 동서나 시누이가 자랑 삼아 선보이는 명품 옷과 핸드백은 살림꾼 아내들의 지난 세월을 회한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취업이나 결혼 계획을 묻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 될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만 서로 간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딜레마를 내재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만큼 갈등의 소지가 상존한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명절은 아련함과 스트레스의 충돌지대가 된다. 가족 구성원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더욱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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