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재미있다. 첫 장을 읽으면 다음 장이 궁금해 못 견디는 추리소설처럼. 1회로 완결되는 단막극은 제쳐두더라도 일일연속극이나 주말연속극은 시청자의 공감을 자아내고 몰입하게 하는 강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지상파 방송의 주간 시청률 1, 2위에는 언제나 드라마가 랭크되며 이 같은 상황은 케이블TV 방송에서도 재현된다. 100여 개의 케이블TV 채널 가운데 KBS 드라마, MBC 드라마넷, 그리고 SBS 드라마플러스 등이 채널별 시청률 상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듀서들은 자신의 프로그램을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해 최상의 제작 노하우를 동원한다. 예산 역시 부족하지 않을 만큼 지원된다. 이로 인해 ‘무한도전’과 ‘1박2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정보, 교양, 오락 프로그램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방송시장을 지상파 방송사가 장악하고 있는 이유다.
케이블TV 방송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전송망을 이용해 뉴스, 드라마, 영화, 스포츠 등 전문화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프로그램을 유료로 제공하는 서비스. 15년 전 9만여 가입자를 대상으로 방송을 시작한 케이블TV 방송은 지난해 말 현재 1520만 가입자가 시청하는 주요 미디어로 성장했다.
SO는 전국 77개 권역에 걸쳐 103개가 존재한다. 하지만 몇 몇을 제외하곤 영세하다. 212개에 달하는 PP 역시 자금력 부족으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가 골리앗이라면 이들은 에누리 없는 다윗인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의 방송정책은 IPTV와 같은 신규 플랫폼 도입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반면 케이블TV 방송의 주요 수익원인 광고시장, 수신료는 정체를 거듭했다. 저가 출혈경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 그나마 지상파 방송 재전송은 기존 가입자 유지 및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져 나온 지상파 방송사의 재전송 대가 요구는 케이블TV 방송에 견디기 힘든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를 볼모로 한다는 비판에도 재전송 중단이란 초강수를 둔 것도 이 때문. 물론 저작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지상파 방송사의 주장에도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케이블TV 방송은 지상파 방송의 난시청 대책으로 출발한 만큼 재전송은 자연스러운 옵션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케이블TV, IP
TV 등 신규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까지 음양으로 방송정책의 수혜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방송광고시장의 74.1%를 차지할 정도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지상파 방송사는 케이블TV의 계열 PP를 통해 광고수익과 수신료를 챙기고 있다. 또한 다른 PP에 대한 프로그램 판매, VOD 판매 등을 통해 저작권료를 받고 있다.
국내 방송시장은 아직도 규모가 작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프로그램의 저작권이 먼저냐, 재활용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시청자 역시 지상파냐, 케이블이냐 하는 전송로에는 관심이 없다. 양질의 콘텐츠를 원할 뿐이다. 지금은 콘텐츠 확대 및 유통 활성화를 위한 공생적 생태계 조성이 우선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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