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살아 있는 역사’ 김동호(73) 집행위원장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물러난다. 지난 1988년 영화진흥공사(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 사장에 임명되면서 영화계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강산이 한번 하고도 절반이 바뀐 뒤에야 주위의 강한 만류를 무릅쓰고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했다. “영화제를 떠나지만 한국 영화계를 위해, 또 나를 위해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다음달 7일 제15회의 개막을 앞두고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쓸 만큼 여전히 분주한 그와 서울 명동의 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마주했다.
)15년 동안 영화제에 몸담고 있으면서 쌓인 항공사 마일리지만 해도 엄청날 듯싶습니다.
주로 이용했던 모 항공사는 마일리지가 140만 포인트입니다. 구체적으로 계산해본 적은 없는데, 일 년 중 평균 200일은 해외에서 체류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떨어져 있는 사모님의 불만은 대단하겠는데요.
))아내는 일찌감치 (저를) 내놓았어요. 불만이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니 모르는 것이고요. 허허.
)부산국제영화제가 지금처럼 성장할 것으로 출발 당시부터 예상하셨나요?
))생각도 못했죠. 처음에는 (규모는) 작지만 권위 있는 영화제를 지향했습니다. 이탈리아의 페사로국제영화제처럼요.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습니다. 앞서 시작한 도쿄국제영화제나 홍콩국제영화제를 능가하려면 덩치가 있어야 했거든요. 아시아권의 예술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관객들을 끌어모아 성대한 영화 축제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저 혼자만의 공로라기보다는 부산시와 부산 시민 등 많은 이들이 헌신적으로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영화제가 계속되면서 몇 차례 고비도 있었는데요.
))돈 문제가 매번 풀어야 할 매듭이었습니다. 3회부터 5회까지 국고 지원이 10억원에 불과했고, 6회 때는 정부가 그마저도 지원하지 않겠다고 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올해도 전체 예산 100억원 가운데 국고 지원금은 15억원입니다. 판은 커지고 물가는 오르는데, 국고 지원금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죠.
)국고 지원은 다른 해외 유명 영화제들과 비교해 어떤 수준입니까?
))칸과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경우, 전체 예산의 절반 정도가 국고 지원으로 충당됩니다. 3년 전 수치로 칸은 2000만 유로 가운데 1000만 유로를, 베를린은 1800만 유로 가운데 800만 유로를 각각 정부로부터 지원받았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일수록 국고 보조는 필수나 다름없어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그래도 이루지 못해 아쉬운 일이 있다면요.
))영화제가 정부의 도움 없이 자립하려면 재단이 있어야 합니다. 재단을 마련하려면 약 1000억원 정도가 필요한데, 이를 모으지 못해 가장 아쉽습니다. 영화제 기간중 부대 행사로 열리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는 원래 상설로 운영하고 싶었는데, 성사되지 않아 나중으로 미룬 게 가슴에 걸리는군요.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한 영화제가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못해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습니다.
))우선 영화제만의 색깔과 정통성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운영하는 데 있어 독립성 확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지자체로부터 도움은 받지만, 운영과 프로그래밍에서는 간섭받지 말아야 하겠죠.
)‘유종의 미’는 어떻게 거둘 생각입니까?
))19개의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책을 출간합니다. 출간을 축하해주기 위해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칸의 티에리 프리모 예술감독 등 지인들이 옵니다. 그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영화제가 끝나면, 아내와 함께 못 가본 해외 영화제를 제 돈으로 구경할 겁니다. 그때는 마음 편하게 둘러보고 와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