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42)이 생애 첫 리메이크 음반을 발표한 것은 단순히 과거의 유행가를 다시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전히 호소력 짙은 그의 목소리에는 시간에 가려진 명곡의 가치까지 함께 스며들었다.
)윤상·김현철의 90년대 감성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 김현철의 ‘끝난 건가요’, 김민종의 ‘왜’, 이승훈의 ‘비 오는 거리’ 등 1990년대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곡들과 2004년 히트곡인 김종국의 ‘한 남자’ 등 다섯 곡이 이번 음반에 실렸다.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 붙여진 제목이지만 ‘가려진 시간 사이로’가 앨범을 만든 이유를 함축하고 있어요. 처음 리메이크 제의를 받았을 때는 ‘왜’ ‘어떤 의미’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90년대 음악이 지금 재조명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각이 모였어요.”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이 되고,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이돌 음악만 있는 것처럼 비치는 세태에 이런 음악도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죠. 이런 가려진 시간과 그런 음악이 없었다면 지금의 아이돌 음악도 없었다는 걸 말이죠.”
윤상의 대표곡인 ‘가려진 시간 사이로’는 발라드 원곡을 세련된 어쿠스틱 재즈로 편곡하는 등 자신의 고유한 음색을 받쳐줄 따뜻한 사운드를 위해 이성렬(기타), 강수호(드럼), 이태윤(베이스) 등 정상급 세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고르다 보니 모두 남자 가수들의 곡으로 채워졌어요. 그래서 편곡자가 고생을 많이 했죠. 원곡의 멜로디에 충실하면서 지금의 트렌드와 동떨어지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요.”
유일한 21세기 발표 곡인 ‘한 남자’는 미국의 버클리 음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한국 가요를 그리워하며 가장 즐겨 듣고 불렀던 노래다. 담담하게 시작하는 장혜진의 보컬에 소박한 편곡으로 애절함이 묻어난다.
)가요계 획일화에 자극제
대중가요의 어제와 오늘에 누구보다 각별한 애정을 가지는 이유는 강단에서 미래의 가수들을 길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한양여대 실용음악과에서 강의했고, 지난해 3월 전임교수로 임명됐다.
“연대별 음악 흐름을 모르고는 지금의 음악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강의가 있어요. 20년대 윤심덕의 ‘사의 찬미’부터 지금의 가요·팝·재즈까지 아우르는 수업인데 학생들은 ‘예전 음악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는 말을 참 많이 해요.”
점점 획일화돼 가는 음악을 접하고 있는 신세대에게 “반찬이 많은 밥상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대중음악이란 대중을 상대로 한 음악인 만큼 대중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하죠. 그런데 지금 대중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택의 기회를 풍성하게 마련해 줘야 하는 책임감이 더욱 절실하죠.”
화제가 되고 있는 ‘슈퍼스타K 2’에는 자신의 제자들도 여럿 참가해 관심이 많다. 예비 가수들의 높은 수준에 놀라기는 했지만 ‘노래를 잘한다’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장훈씨는 가창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정말 좋은 보컬을 가진 가수예요. 누가 그의 노래를 불러서 그만큼의 느낌을 낼 수 있겠어요. 제 나름의 기준과 색깔로 풍성하게 표현해내는 것이 진정 좋은 보컬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