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맞바꿀 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을까. 있다고 치자. 하지만 이를 위해 죽음이라는 극도의 공포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역사에는 가끔 등장한다. 사실의 기록을 위해 초개, 즉 풀과 티끌처럼 목숨을 내던진 사관(史官)이 주인공.
옛 왕정시대의 군주는 절대권력 그 자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군주의 잘못을 곧이곧대로 들춰내는 일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했다. 바로 이 같은 상황이 양심과 목숨을 모두 지킬 수 있는 묘안을 도출해 낸다. 주문이휼간(主文而譎諫)이 그것.
주문이란 글을 수식하는 것을 말한다. 휼간은 직설적이지 않게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런 글을 언뜻 보면 아무런 평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장의 맥락을 잘 짚어보면 날 선 비판이 담겨 있다. 역사서 ‘춘추’를 통해 군주의 잘못을 추상 같은 붓 끝에 담아냈으면서도 공자가 73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이 같은 서술법, 즉 춘추필법 때문이다.
전한시대의 유학자 동중서는 춘추필법의 개념을 확장한다. 하나의 사건을 지목하고, 원인을 조사하며,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리는 게 춘추필법의 정신이라는 것. 오늘날로 치면 게이트 키핑, 즉 여과기능도 한 것.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요즘 루머, 스캔들, 가십을 쏟아내고 있는 인터넷 언론은 춘추필법의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루머는 근거 없는 소문이다. 스캔들은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좋지 못한 소문. 그리고 가십은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소문이나 험담을 흥미 본위로 다룬 기사를 말한다. 모두 소문을 기반으로 한다. 소문은 듣는 사람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폭포효과(waterfall effect) 때문이다. 일단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소문을 믿으면 다른 사람 역시 거짓이라고 볼 특별한 근거가 없는 한 믿게 된다는 것. 특히 악의적인 소문일수록 개인이 객관적 정보를 접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수의 생각에 의존하게 된다.
직장이나 학교 같은 오프라인 공간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소문이 닿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널리 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며, 전후맥락도 차단된 채 전달된다. 결국 소문의 당사자는 해명할 기회도 없이 혼자만의 공간에 갇히게 되며, 극단적 행위까지 하게 된다. 여배우 최진실의 자살을 이끈 것은 인터넷이라는 뉴욕타임스(NYT)의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이 때문.
물론 개똥녀 사건에서 보듯 인터넷을 통한 소문의 확산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느끼도록 하는 등 사회규범의 진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부작용이 너무 크다. 법적인 처벌은 ‘너는 나쁜 짓을 했다’는 수준에 그치지만 인터넷을 통한 모욕감은 ‘너는 수준 이하의 인간’이라는 디지털 주홍글씨를 새기게 한다.
인터넷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인간은 선입관과 편견 때문에 중립적인 태도로 정보를 처리하기 어렵다. 더구나 여과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마추어에게 무제한의 미디어 권력을 부여한 것과 같다. 여기에 상업성으로 무장한 인터넷 매체와 포털이 가세하면 악어에게 고기를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어지러운 세상, 춘추필법이 새삼 생각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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