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걸어오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검정 셔츠에 스키니 진, 나이키 운동화…. 최신 유행 패션에 반짝 빛나는 피부가 20대 청춘들도 울고 갈 정도다. 그는 “내 나이는 언제나 37세”라고 말한다. 감성이 무뎌질까, 늘 젊게 살고 싶어서다.
◆우리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그는 아직도 25년 된 명함을 건넨다. 처음 ‘이상봉’이란 브랜드로 매장을 냈을 때 만든 명함이다.
“명함을 만들어준 사람조차 ‘촌스러우니 바꾸라’고 해요. 하지만 내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했는지, 초심을 잊고 싶지 않아서 고집하고 있어요.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 제 밑거름이니까요.”
올해는 그에게 특별한 해다. 패션 디자이너로 일한 지 어느덧 30년을 맞았다.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한 해 한 해였다.
“바쁘게 사느라 의도적으로 뒤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은 지금까지의 ‘나’를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5월에는 기념 전시회도 열었고요, 올해 말엔 책도 한 권 나옵니다.”
디자이너 이상봉을 유명하게 만든 건 ‘한글 디자인’이다. 그는 패션을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글도 써보고 태극기도 형상화해보고 다양한 작업을 시도했죠. 내가 만드는 모든 것에 ‘우리 것’이라는 감성을 담고 싶었어요. 그게 디자이너로서 제 의무라고 생각했고요.”
이상봉 디자이너는 ‘외도’도 아름다웠다.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휴대전화·침구·담배에 디자인 감각을 실었다. 도자기에도 한글을 입혔다. 그가 만든 도자기 작품은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앨버트 왕립박물관에도 영구 전시돼 있다.
“패션 디자이너라고 옷만 만들 수 있나요. 생활문화가 발전할수록 일상 속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잖아요. 그냥 제 감성과 생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올해도 파리컬렉션 무대 올라
그는 현재 파리에 있다. 2011 S/S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떠나기 전날까지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이렇게 파리컬렉션을 찾은 게 1년에 두 번씩, 벌써 16번째다.
“이번 컬렉션은 컬트 영화 ‘성스러운 피’에서 모티브를 땄어요. 두 가지가 결합돼 하나가 되고, 옷 안에 옷이 있어서 하나를 빼도 또 다른 옷이 되는 것을 표현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구원이란 메시지예요. 조금은 추상적이죠? 하하.”
얼마 전 별세한 앙드레김 선생을 이을 ‘국민 디자이너’로 꼽힌다는 평가엔 손사래를 쳤다.
“너무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분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린 ‘외교사절단’이셨잖아요. 그만한 분이 또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현재 진행형’인 디자이너일 뿐이죠.”
◆다문화 가정 돕기에도 앞장
굵직굵직한 세계 무대는 수없이 올랐지만, 일반인들과 호흡할 기회는 적었다. 그래서 항상 대중과의 만남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던 중 ‘강남패션페스티벌’의 대표 디자이너라는 직책이 맡겨졌다. 다음달 16일에는 메인 패션쇼도 진두지휘해야 한다.
“8가지 주제로 갈라쇼를 진행하려고요. 테마별로 10가지 옷을 선보일 건데, 한복·전통 가구·자수 등을 접목한 작품만 모았어요. 시민들이 패션을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이상봉 디자이너는 이번 축제를 위해 한정판 가방도 제작 판매한다. 수익금 전액은 다문화 가정을 돕는 데 쓰기로 했다.
15∼17일까지 열리는 ‘강남패션페스티벌’은 패션키즈 드로잉전·패션마켓 등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그 가운데 ‘루키 패션 콘테스트’는 신진 디자이너의 젊은 감각을 뽐낼 수 있는 기회다. 그는 미래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당부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 남을 닮으려고 들면 빨리 지쳐요. 무엇보다 자신의 장점을 찾고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먼저예요. 그래야 비로소 자신만의 색이 묻어나는 독창적인 디자인이 나오거든요.”/사진=라운드테이블 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