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왜 볼까? 새로운 인식이나 삶을 관통하는 혜안을 찾기 위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즐거움, 노동의 피로를 씻어줄 오락거리를 찾기 위해 뮤지컬을 본다.
뮤지컬 ‘스팸 어랏’은 그런 뮤지컬의 본분에 가장 충실하게 임하는 작품이다. “인생 뭐 있어요. 즐겨봐요.” 아서왕이 부르는 노래처럼 ‘스팸 어랏’은 보는 내내 쉬지 않고 즐거움을 준다.
아서왕이 기사들을 모아 성배를 찾아가는, 우리가 익히 아는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기본 줄거리로 한다. 그러나 ‘스팸 어랏’의 아서왕과 기사들은 조금씩 나사가 헐거워진 인물들이다.
코코넛 뚜껑을 말발굽 소리로 등장하는 아서왕부터 심상치 않더니, 물불 안 가리고 마초 성향을 드러내는 랜슬렛 경은 그의 본성이 게이임을 알게 된다. 아서왕에게 신검을 준 호수의 여인은 같은 노래를 가사만 다르게 부르며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데 내 노랜 이것밖에 없고 등장도 시켜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아서왕의 무리를 상대하는 적들도 별반 나을 것이 없다. 영화 ‘황산벌’의 살벌한 전라도 욕에 버금가는 프랑스 버전의 욕을 하는 병사, ‘미’ 소리만 내는 숲의 정령,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살짝 다친 것뿐이라며 우기는 기사 등 황당하고 엉뚱한 캐릭터들이 주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아서왕의 마지막 임무는 연예인을 섭외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올리는 것. ‘스팸 어랏’에서는 작품 곳곳에 다른 뮤지컬들을 패러디하면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원탁의 기사들이 모인 자리에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가 등장하거나, 하이드·팬텀·아이다·콰지모도 등 뮤지컬의 유명 캐릭터들이 총집합한다. 곳곳에 숨어 있는 뮤지컬 장면 패러디들은 공연 마니아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스팸 어랏’은 뮤지컬의 즐거움과 본분을 설파하는 뮤지컬이다. 이 안빈낙도적인 테마를 즐기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상업적인 속성마저도 뮤지컬적이다.
영미권의 웃음 코드를 한국적으로 번안한 드라마와 정성화, 정상훈, 김재범, 신영숙 등 노련한 뮤지컬 배우들의 감각 있는 코믹 연기가 일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