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초입에 위치한 ‘눈 스퀘어’ 쇼핑몰은 요즘 주말이면 밀려드는 고객들로 인해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손님의 상당수는 이곳에 입점한 자라와 H&M, 망고 등 ‘패스트 패션’(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에 맞춰 디자인을 빨리 바꿔 내놓는 옷) 매장을 방문한 10∼30대들이다.
이들은 올가을 유행한다는 체크무늬 셔츠와 라이더 재킷 등을 입어보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바로 인근에 위치한 롯데백화점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롯데가 일본에서 들여온 유니클로는 물론,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또 들어서 있는 자라 매장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눈 스퀘어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H&M 2호점이 눈에 띄고, 중앙우체국 쪽으로 방향을 꺾으면 또 다른 유니클로 매장과 스파오가 보인다.
예전 같으면 자칫 싸구려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옷에 젊은 층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멋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디자인·기능 면에서 우수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패스트패션이야말로 유행에 민감하지만 구매력은 낮은 10∼30대들이 기다려온 것이라는 얘기다.
의류업계 한 관계자는 “오래 입는 제품은 수입 명품을 사고 유행 따라 한철 입고 버리는 옷은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사는 것이 최근 트렌드”라고 전했다.
패스트 패션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들의 경쟁력을 분석한 보고서도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4일 낸 보고서에서 패스트패션의 성공 비결은 이름 그대로 ‘F.A.S.T’, 즉 패션성(Fashion), 저가격(Acceptable price), 신속성(Speed), 신뢰성(Trust) 등 4가지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라의 경우 세계 유명 패션쇼에서 화제가 된 아이템을 싼 옷감으로 경쟁사에 앞서 빠르게 내놓고, 2주에 한 번 기존상품의 70% 정도를 신제품으로 바꾸는 신속성으로 승부한다. 유니클로는 제조사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반품 없이 중국 현지공장의 제품을 전량 사들였다.
전 세계 35개국에 2000여 점포가 있는 H&M은 유명 디자이너, 예술가와 협업으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해 패션성을 높였다. 또 자라는 시즌 초기에 15%만 생산하고 나머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해 재고를 최소화했고, 유니클로는 중국 위탁생산으로 생산원가를 낮춰 저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한상의는 “한국 특유의 동대문 패션문화, ‘빨리빨리’ 정신은 이들 패스트 패션 기업을 벤치마킹하는 좋은 토대가 될 것”이라며 “국내 패션시장 구조 개편과 공급망 관리 능력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