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윤지(27)가 올가을 트레이드 마크인 환한 미소를 잠시 거둔다. 데뷔 후 첫 연극 무대인 ‘프루프’(12일∼12월 12일)에서 천재성과 광기 사이에서 고민하는 캐릭터를 끌어안기 때문이다.
순둥이 내 인생…숨겨온 감정 폭발
안방극장에서의 그는 늘 밝고 환한 미소 같았다. 지난 7월 말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민들레 가족’의 혜원 역시 그랬다. 늘 곁에 두고 싶을 만큼 긍정적인 에너지가 그득한 사람. 그런 그가 첫 연극에서 기존과 전혀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니, 이미지 변신을 작정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몰라봐 주셔서 그렇지 저는 늘 작정하거든요. (웃음) 이번엔 작정하기도 전에 결정을 내린 게 좀 다르지만요. 파란 커버의 책(희곡)을 받아든 지 40분 만에 ‘이건 할래요, 해야겠어요’라고 했어요.”
연극인 줄도 모르고 집어든 ‘프루프’는 그를 완전히 뒤흔들어 놨다. 천재 수학자 존 내시를 모티브로 쓰인 이 작품은 천재 수학자 로버트와 그의 딸 캐서린의 천재성과 광기, 그 속을 파고드는 갈등과 인간 관계를 조명한다.
“어떤 배우의 이력에서나 전환점이 될 만한 엄청난 작품이에요. 대중은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도 밝고 순한 이윤지에게 익숙함을 느끼지만, 실은 그렇게 보이려고 애쓴 부분이 많았거든요. 감정을 마음껏 토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커요.”
‘올드보이’ 오디션 낙방…다시 만난 그녀
작품과 캐릭터에 몰입하는 정도가 큰 여배우들은 작품에 빠져 지내는 내내 일상까지 지배당하곤 한다. 그 역시 “연극 하더니 애가 달라졌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싫지 않은 눈치다.
“상대 배우에게 욕설을 퍼붓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연습하다 ‘오빠, 정말 죄송해요’했는데 속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더라고요. 남의 기분까지 신경 쓰느라 제 감정은 완전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편인데, 캐서린은 야성미가 넘치죠.”
이번 작품은 올해 연극계에서 화제 몰이 중인 ‘무대가 좋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와 한솥밥을 먹는 김효진과 문근영이 이전 두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도전, 릴레이의 스타트를 끊었다. 이번 작품에선 강혜정이 같은 역에 캐스팅됐다.
“예전에 영화 ‘올드보이’ 오디션을 봤었거든요. 그때 제 차례가 혜정 언니 다음 다음이었어요. 언니 연기에 압도당해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오디션에 응했죠. (웃음) 언니와 함께 캐서린을 연기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미리 알았더라면요? 그래도 캐서린은 못 놓았을 것 같아요.”
캐서린에겐 사람 흔드는 마력 넘쳐
작품과 캐릭터를 향한 확신은 단단하지만 하루 12시간 머무는 연습실에서 같은 캐릭터를 전혀 다르게 소화하는 강혜정의 연기 방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과 고민에 휩싸이게 했다.
“해석 방법이 너무 달라 기본적인 동선 자체가 달라지는 독특한 경험도 했죠. 캐서린은 분명 내 사람이기도 한데 언니가 해석한 캐서린을 보노라면 제 사람이 마구 흔들리는 거예요. 제게서도 그런 기가 느껴질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는 지금껏 연기하고 살아온 방식에 대해 “숨 막히게 답답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생판 남의 무례함에 화가 치밀어도, 흉허물을 보듬어 줄 가족과 친구에게조차 격정적인 감정은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본능이란 의미에 대해 더 생각하고 현실에서 본능적이지 못했던 제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이번 작품이 지나고 나면 배우로나, 한 인간으로나 좀 더 유연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