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운영 기조로 내세운 ‘공정한 사회’는 먼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 공무원들이 나랏돈을 내 돈 쓰듯 하는가 하면 특혜를 통해 돈을 불린 것으로 드러났다. 현역 장성의 아들은 해외파병 등 근무 여건이 좋은 곳에 배정받았다. 사립 초등학교 교장은 ‘뒷돈’을 받아챙겼다.
5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공정’을 솔선수범해야 할 사회지도층이 특혜와 이권에 혈안이 된 채 공정한 룰을 깬 사례가 쏟아졌다.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병원의 최근 5년간 R&D 예산 총 40여억원을 분석해 임상연구비를 월급처럼 지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국립부곡병원의 ‘치매 등에 7분선별 검사를 이용한 인지장애의 비교’ 연구 영수증에는 ‘그○○○’ 노래연습장과 ‘준○○○’ 미용실 영수증이 포함돼 있었다. 다른 9건의 연구비 지출 내역에는 마트 7회, 술집 19회 등 모두 의료연구와는 관련 없는 곳에 지출됐다.
판사와 중앙정부 공무원들은 고액 강의료를 받거나 대학원 학비를 면제받는 등의 이익을 봤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법관의 외부강의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법관의 일회성 외부강의는 98건으로 시간당 강연료가 70만∼80만원에 달했다.
특허법원 노모 판사는 지난해 12월 대한변리사회 요청으로 248만원(시간당 62만원)을 받고 4시간 강연했다. 서울가정법원 박모·정모 판사는 올해 4월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변호사연수원이 주최한 특강 강사로 나서 각각 2시간 강의료로 152만원(시간당 76만원)을 받았다.
서울시내 사립대 2곳을 조사한 김유정 민주당 의원은 교육과학기술부 직원 12명이 S사립대(10명)와 K사립대(2명) 대학원에 수학하며 ‘특혜성 장학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S사립대에 다닌 9명은 총 4학기 중 3학기 동안 ‘유관기관 특별 장학금 명목’으로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았다. K사립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연구관과 연구사 2명은 3급 이상 공무원에게 지급 규정을 어겨 가며 ‘총장장학금’을 받아 등록금을 반액만 낸 것으로 밝혀졌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일반 사병 중 현역 군 장성의 자제 39명(훈련병 2명 포함)은 아버지 덕에 특혜를 받았다. 전체 사병 중 1%에 못 미치는 레바논 평화유지군 동명부대 파병자 중 장군의 아들은 무려 6명(16.2%)이었다.
◆사립초등학교선 1000만원씩 받고 입학장사
‘공정한 사회’는 초등학교에서도 실종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100여 명이 넘는 학생을 부정입학시켜 비자금 약 18억원을 조성·운영한 오모(64)씨와 조모(63·여)씨 등 한양대 부설 한양초교 전 교장에 대해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교장이 조성한 비자금은 교사 외식비와 명절 떡값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고위 공무원과 사회 지도층이 사익추구에 골몰하는 모습에서 ‘공정한 사회’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기득권을 가진 사람에게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도록 정부가 근본적인 게임의 룰을 바꾸지 않는 이상 ‘공정한 사회’는 구호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