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에 떡 박힌 오우삼이라는 이름만 믿고 ‘검우강호’를 찾은 관객들은 당초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강호의 의리가 떨어짐을 한탄하는 남자 영웅들도 없고, 그들이 폼 나는 슬로모션으로 저지르는 학살극도 없다. 그리고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봐도 하얀 비둘기는 깃털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포스터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볼 것이고 ‘더블 비전’과 ‘실크’를 감독한 대만 감독 수 차오핑이 각본을 쓰고 공동 연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검우강호’가 이 익숙한 오우삼의 세계 대신 보여주는 것은 경공으로 날아다니는 무림 고수들이 주인공인 명나라 배경의 이야기이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현대 범죄물과 비슷한 액션물이다.
영화는 소유자에게 엄청난 능력을 준다는 소문이 도는 인도 라마승의 유해를 차지하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무림 고수들의 결투들을 그리고 있는데, 이들의 묘사는 마치 현대 조직폭력배 무리를 보는 것 같다. 강호의 낭만도, 추구하는 대의도 없다. 그들은 오로지 이기적인 목적으로 움직이는 직업 범죄자들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들은 은행강도도 저지르고 추적자들을 피하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한다. 얼굴을 바꾼 자객인 양자경의 캐릭터가 순진무구해 보이는 정우성 캐릭터와 결혼해 부부생활을 하는 장면에서, 앤절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공연한 모 액션물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최근 중국에서 제작되는 대작 영화들의 수상쩍은 정치적 메시지도, 중화사상도 없다. 대신 영화는 철저하게 캐릭터들의 사사로운 동기에서 출발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마치 라마승의 유해를 이용해 지구라도 정복할 것 같던 음모 속의 주인공들이 서서히 자신의 초라한 동기와 갈망을 드러내는 스토리 전개는 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감독의 자의식을 지워버리고 다양한 스타일의 무술이 공존하며 얽히는 결투 장면들을 날렵하게 그려낸 액션 장면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배우들 역시 별다른 과장 없이 드라마, 액션, 코미디, 로맨스가 무심하게 어울리는 이 드라이한 이야기를 소화해낸다.
그리고 양자경과 정우성의 나이 차이 따위는 걱정하지 마시길. 영화를 보는 동안 자연히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1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