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정희(63)가 써내려간 노래들은 가슴으로 토해낸 고독과 자의식의 증거다. 그것들은 날카롭게 벼린 시어가 돼 형형한 빛을 낸다. 등단 41년째 열 한번째 시집 ‘다산의 처녀’(민음사)를 엮어냈다. “가을이니 머플러를 멋있게 둘러야겠어. 머플러는 내 트레이드마크거든.” 덕수궁 돌담 사이사이로 시인의 웃음이 여백처럼 박혔다.
순결한 몸을 던졌고
대학(고려대)에서 시를 가르치던 시인은 지난해 분필을 내려놓았다. 시를 쓸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젊어서 시에 온몸을 던진 수십 년, 맑은 감성으로 시를 쓸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인은 언어를 고르고 골라 ‘다산의 처녀’를 완성했다.
“젊었을 땐 한순간 한순간이 꽃인 줄을 몰랐어요. 나중에야 계단이고 정상이고 없다는 걸 알았어요. 발걸음마다 꽃송이가 가득입니다. 내 삶은 짧을지라도 내 시들은 긴 생명을 주고 싶었고, ‘다산……’은 시어의 농도 면에서 단연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일 초도 배신하지 않았더니
그에게는 일상의 군내조차 치열한 시어가 된다. ‘인생은 짧고 결혼은 길’어서(‘비극 배우처럼’ 42쪽) ‘아무하고도 자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눕고 싶’은 욕구가 시인에게도 찾아온다. 그럴 때 시인은 ‘사내들은 이럴 때 사창가를 어슬렁거리나보다’고 혼잣말한다.(‘꽃이 질 때’ 44쪽)
“‘다산…’은 여성의 생명성에 관한 고찰입니다. 육체적 생명을 잉태하는 여자로 태어나, 창조적 생명을 만드는 시인이 됐으니 잉태와 생명에 대해 진지해지더군요.”
시인은 또 “시는 문학 자체로 말하는, 유목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새떼처럼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은 시는커녕 시인이 아니란다. 1970년대 등단한 여류 시인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도 타협하지 않는 꼿꼿함 때문이다.
“맹수는 고독이 사무칠 때 세상을 향해 크게 포효하지요. 시인는 휩쓸리지 않고 곧게, 한 방향으로 나가야 해요. 시인의 유일한 통증은 내적인 분만통이고, 가장 큰 적은 시류와 세태의 반격이지요.”
자유로워지더라
쉽게 써지는 시가 있으랴. 어떤 시는 400∼500번씩 고쳐 쓰고, 어떤 시는 2년 동안 수정한 것도 있다. 언어를 뛰어넘는 문학적 교감일까. 그의 시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알바니아어 등 8개 언어로 번역됐다. 시인 문정희를 우리뿐 아니라 세계가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의 생명성에 관한 시를 쓴 시인이 30∼40대 밥벌이하는 여성에게 하고픈 말은 뭘까.
“비겁하거나 뻔뻔하지 마세요. 남성에게 기대거나 자신의 여성성에 편승하지 말라는 겁니다. 식민지를 털고 황무지를 마주할 자신이 서야 비로소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야말로 어떤 순간에도 포기해선 안 되는 보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