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하면서부터 내게는 하루에 한 번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는 몹쓸 습관이 생겼다. 강박적인 이 습관을 끊으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나의 가는 팔목이 허락하는 한, 이젠 대놓고 나에 대한 모.든.글.을 클릭해 보고 있다. 단 비판조의 냄새가 나는 것 같으면 심호흡을 크게 한 번 쉰다. 즐길 수는 없겠지만 피해서도 안 되니까.
자기 이름 내건 채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악성 e-메일이나 악플 세례를 성장기나 과도기의 무용담처럼 이야기 하곤 하던데, 나 역시도 그간 몇 번 도를 넘은 악성 e-메일을 순차적으로 받은 적이 있었다. 손이 얼어붙고, 입안이 마르고, 머릿속은 빙빙 멍해지고, 속에선 열이 쌓였다. 그 느낌은 10여 년 전 암 선고를 받았을 때와 가장 정확히 닮아 있었다.
당연히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배우자나 업무 파트너에게 호소하고 상의해도 그 생생한 공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장 누군가가 칼을 들고 작업실 창문으로 뛰어들 것 같아 아파트 복도에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집 주소 따위야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는 이 시대에 혼자 집에서 일하다가 퀵서비스 아저씨가 벨을 누르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두려워 택배물건을 그냥 놓고 가라 했다. 그때 알았다. 이 세상엔 무조건 피해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고.
최근에 방송일 관계로 개그우먼 정선희씨를 만났는데 처음 보자마자 그녀는 다짜고짜 “아우 선생님 저 같은 여자,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죠∼”라며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건네왔다. 내가 그녀를 대할 때 어렵거나 어색해 할까봐 자기 희화화로 나의 긴장을 먼저 나서서 풀어주며 배려하고, 동시에 나의 태도가 그녀 자신을 상처 입힐까 봐 스스로를 배려한 신중한 익살이었으리라.
지난주 학력 위조 파동에 휩싸인 가수 타블로가 방송에서 울먹거리며 그저 이 모든 감정이 “벅차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서 그 ‘벅참’이 얼마나 사람 마음의 저 깊은 곳까지 고통을 줄 수 있을까, 그의 1%에도 못 미치는 고통을 겪어본 난 저릿저릿 상상하며 말없이 같이 울어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