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빗어 넘긴 머리. 책을 통째로 외운 듯한 말투.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위계출(59) 전 가나 대사의 외모는 딱 ‘고리타분한 할아버지’였다. 대화도 사회복지개론 교과서 1장에서나 볼 법한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정의로 시작했다. 그는 이 말을 1시간 동안 여러 차례 반복했다.
“어떻게 장애인 야학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는 걸까”라는 의구심은 10분 만에 바뀌었다. 그는 ‘행동하는 청년’이었다.
위 전 대사는 1976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외교통상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해외에서 산 18년이 그를 ‘청년’으로 남아 있게 했다. 해외 공관 근무 시절, 병원에 입원한 환자나 고아·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레 공무가 개인적 관심사가 됐다. 외교부를 정년 퇴임한 2008년 11월 관심을 행동으로 변화시켰다. 만 58세였던 이듬해 3월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그를 사회복지 현장으로 이끌었다. 그중에서도 “한 국가의 인권 수준 척도는 장애인의 인권 수준”이라는 말에 이끌려 장애인 복지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현재는 재능나눔 차원에서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 영어교사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야학에는 뇌병변 장애인이 많아요. 집 밖에서 햇볕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의무교육이라고 하는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전체 장애인의 10% 안팎이라는 점이에요.”
8개월여 수습교사를 마치고 올해 첫 수업을 맡은 위 전 대사는 “20∼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맞는 수업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며 “내용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검정고시에 맞는 교과과정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오랜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도 있었으나 “현직에서 물러났다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외교부 장관 출신 선배의 충고가 그를 다그쳤다. 또 은퇴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석 같은 것”이라는 생각도 그가 청년처럼 생각하며 살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60년쯤 살아보면 젊을 때처럼 마냥 날뛰게 되진 않아요. 대신 살면서 갈고 닦은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가 은퇴인 것 같아요. 또 새로 할 일을 발견하니까 오히려 더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중국과 아프리카 근무 경험을 살려 지난해 초 발기한 한·중문화경제우호협회와 아프리카 진출 기업에 대한 자문 역할도 맡고 있다. 올해 대학원 과정이 끝나면 내년부터는 ‘장애인’을 주제로 논문을 쓸 생각이다. 잠잘 시간도 빠듯하다는 은발의 노신사로부터 청춘의 열정을 보는 게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