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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효봉 스님 열반

[오늘의 역사]

1966년 오늘, 경남 밀양군 표충사 서래각에 머물던 효봉스님이 열반에 드셨다. 38세 늦깎이로 출가해 조계종 종정까지 지낸 효봉 스님은 구산과 법정 스님의 은사로 잘 알려져 있다. 1888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난 스님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나와 조선인 최초 판사가 됐다. 1923년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 내린 것에 회의, 부귀영화를 미련 없이 내던지고 엿장수로 변신해 3년 여를 떠돌다 출가했다. 평생 무(無)자 화두를 들고 참구했던 효봉스님은 ‘엿장수 중’ ‘판사 중’ ‘절구통 수좌’ ‘너나잘해라 스님’등 별명도 많았다. 6·25전쟁 중 스님은 통영 용화산 도솔암에 머물며 여러 제자들을 키워냈다. 구산. 원명. 완산. 경산. 범용. 경운. 탄허. 성수 스님 등 한국 불교계의 거물들을 줄줄이 배출했다. 다비 후 나온 사리 50과는 송광사와 표충사·용화사·미래사 등에 나누어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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