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36)이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와 구어체의 소박한 언어로 10가지 사랑을 노래했다.
3년4개월 만에 들고 온 4집은 사랑에 관한 지난 기억과 지금의 감성을 멈춰 세운다.
아내 눈초리가 수상해
4집 ‘사랑’은 타이틀처럼 10곡 모두 사랑에 관한 노래다. 다른 가수라면 새로울 것이 없겠지만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다뤄왔던 그의 앨범이라 관심이 쏠린다.
“작곡을 먼저 하는데 쓸쓸한 곡들이 만들어졌어요. 어떤 가사들도 잘 맞지 않았고, 한 곡 한 곡 가사를 붙이다 보니 모두 사랑 얘기가 돼버렸더라고요. 이미 다른 가수의 좋은 사랑 노래가 많은 데다가, 사랑 노래가 가장 어려워요. 그래도 설렘과 다툼, 이별 등을 제 언어로 한번 써보자 마음먹었죠.”
앨범 제목이 ‘사랑’이지만 타이틀곡 ‘그대랑’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별 노래다. 가수는 음악 따라간다는 속설을 아는 그는 “결혼하더니 슬픈 사랑을 노래한다고 와이프가 오해할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결혼 후 첫 앨범이라 집이 아닌 작업실에서 대부분 진행했어요. 완벽히 혼자만 지내다 보니 가사나 곡 모두 외로움이 가득 담겼나 봐요. 혹자는 다시 사랑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게 아니냐고도 하더라고요. 하하.”
‘빨래’ ‘매듭’ ‘보조개’ ‘두통’ 등 단순한 키워드를 제목으로 내세운 곡들은 다양하고 섬세한 감성들이 특유의 글솜씨로 다듬어져 깊은 공감을 준다. 다이내믹한 록 사운드와 아름다운 멜로디가 결합한 ‘그대랑’을 비롯해 스트링, 브라스, 퍼커션 등 다채로운 사운드로 편곡된 곡들이 앨범을 풍성하게 한다.
“지금까지 흥분된 사운드에 직접적인 가사가 많았지만 이번엔 전체적으로 튀는 걸 뺐어요. 언제 어디서 부르고 들어도 공감할 수 있도록 치기를 없앴다고 할 수 있죠. 음악 하는 사람들이 나이 먹으면 그렇게 되나봐요. 뒤늦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자기 만족만을 위한 곡을 피하게 되는 것 말이죠.”
‘이적다운’ 노래 계속
오랜 공백기를 거치며 음악 트렌드와 가요계 환경이 급속히 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아이돌 음악들도 그렇고 좋은 곡들이 많아요. 그럴수록 ‘이적이 잘하는 음악을 하자’는 생각이 강해졌죠. 다른 좋은 음악은 다른 가수들이 충족시켜주니까요. 지난 앨범부터 제 영역을 어느 정도 찾았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는 더욱 그런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지난 앨범이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등 4개의 상을 휩쓴 것도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이런 곡이라면 찾아 듣고 공연을 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공연의 흥행으로 이어졌고, 2007년 소극장 공연 14회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다. 다음달 13∼14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이적 2010 투어-그대랑’으로 3년 만에 단독 공연이 재개된다. 예매 2시간 만에 매진됐고, 부산·대구·대전·창원·안양으로 이어지는 투어 열기는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3집 타이틀곡인 ‘다행이다’는 대표적인 결혼식 축가이자 ‘국민 프러포즈송’으로 사랑받고 있다.
“‘거위의 꿈’에 이어서 또 한번 제게 깨우침을 준 곡이죠. 발표 당시에는 1등을 한다거나 화제가 됐던 곡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좋은 노래는 대중이 알아주고 오랫동안 구전되는 곡이라는 걸 깨달았죠. 이번 앨범에도 그런 좋은 신호가 전해졌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