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21일 개봉)로 14일부터 2박3일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거장 올리버 스턴(64) 감독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가는 곳마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원래 몸에 열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체질은 그의 작품 세계와 닮았다. ‘플래툰’ ‘7월 4일생’ ‘JFK’ ‘닉슨’ 등 연출작 대부분이 폭발할 듯한 열기로 가득 차 대중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5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을 세 시간여 앞두고 이뤄진 만남에서 스턴 감독은 거침없는 달변으로 자신의 작품 철학을 소개하고 한국 영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과시했다.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하자. 콧수염은 왜 길렀나.
베트남 참전 시절에도 길렀던 적이 있다. 원래 똑같은 외양으로 사는 것을 싫어한다. 기를 때도, 자를 때도 있다. 또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남미 사람들과 어울렸는데, 그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콧수염을 기른 이유도 있다.
‘월 스트리트…’는 전편이 나온 지 23년 만에 만들어진 속편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다.
할리우드에서는 보통 6∼7년안에 후속편이 제작된다. 그럼에도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속편을 연출한 이유는 전편 속 미국 금융시장의 상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2년 전 미국을 강타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지켜보면서 속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속편에서도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 특히 미국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국 거대 은행의 모럴 해저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 다만 교과서적인 전개는 아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딸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악덕 금융인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와 스승의 복수를 꿈꾸는 새내기 제이콥 무어(샤이어 라보프) 등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에 초점을 맞춰 오락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실존 인물 혹은 실제 사건을 자주 영화화하는데, 이 경우 어떤 자세로 접근하나.
케이스별로 다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사고 당시 12명의 생존자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닉슨’은 닉슨 대통령의 실체가 궁금해서 덤벼들었던 경우다. 닉슨의 지인들을 통해 들어보면 그는 주위 사람들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지만, 정작 결과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블랙홀 같은 인간이었다. 반면 ‘W’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닉슨과 정반대로, 매우 2차원적인 사람이었다. 역시 그래서 흥미로웠다.
한국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영화는 매우 하드코어하면서도 기상천외한 요소가 많다. ‘올드보이’에서 주인공이 산낙지를 우적우적 씹어먹는 장면이란, 으…. (웃음) 또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인 차원의 이야기 전개가 인상적이다. ‘조폭마누라’ ‘무사’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재미있게 봤다. 특히 ‘조폭마누라’에서 신은경이 보여준 눈빛 연기는 잊을 수 없다. 이번에 부산에서 박찬욱 감독과 좋아하는 한국 배우인 안성기, 설경구 등을 만나 정말 행복했다.
혹시 한국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볼 계획은 없나.
준비 중인 다큐멘터리가 한국전을 다룬다.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이승만을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매우 드라마틱한 전쟁이었음에도, 할리우드에서는 영화화된 적이 많지 않다. 베트남전처럼 승자도 패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매우 처절한 전쟁(dogfight)이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맥아더 장군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니컬러스 케이지와 웨슬리 스나입스처럼 한국인 아내와 살고 있다. 한국인 여성의 장점은?
니컬러스의 한국인 와이프는 대단히, 아주 대단히 예쁘다. 일찍 일어나는 새처럼 정말 부지런하고 근면한 게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아내와 비슷한 또래의) 옛날 한국 여성들이 좋다. 거기까지만 얘기하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