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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궁핍이 만든 걸작 ‘웨지힐’

[정일환의 이야기가 있는 명품]

명품을 얘기할 때 ‘장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절대 빠지지 않는 말 중 하나가 ‘최고의 소재로 만든’이라는 설명이다. ‘장인 최고의 소재=최상의 제품’이라는 공식이다. 그럼 이 방정식에서 ‘최고의 소재’를 빼면? ‘장인=최상의 제품’이라는 등식도 성립할까?

스스로를 구두장이라며 겸손해했던 살바토레 페라가모(Sal

vatore Ferragamo)에게 풀이과정을 들어보자.

9세 나던 해, 페라가모는 사랑하는 여동생의 세례식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독히도 가난했던 페라가모는 그때까지 한 번도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자신은 그렇다 쳐도, 여동생이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을 페라가모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구두 가게에서 버려지는 가죽과 천 조각을 모아 며칠간 밤새워 만든 구두를 여동생에게 신겼다. 지독한 가난이 수제 구두의 대명사 페라가모를 탄생시킨 셈이다.

1936년에도 그는 소재 궁핍은 핑계가 될 수 없다는 모법답안을 또 한 번 제시했다. 당시 페라가모는 대공황의 파고에 휩쓸려 파산을 선고받고 길거리에 나앉은 상태였다. 게다가 조국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의 여파에 내몰려 있었다. 가죽과 철심 등 구두 소재들은 모조리 전쟁물자로 징발돼 사용이 금지됐고, 고급 구두는 더 이상 만드는 사람도, 살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패셔니스타’는 있었던 모양이다. 피렌체에 살던 비스콘티 데모토로네 후작 부인은 사교 모임에 신고 갈 신발을 페라가모에게 의뢰했다. 그는 구두 재료를 구할 길이 없자 코르크를 사용한 ‘듣보잡’ 구두를 만들어 그녀에게 신겼다. 코르크 조각으로 밑창과 힐 사이의 공간을 꽉꽉 채우고 풀로 붙인 괴상망측한 모양새였지만, 과감히 이를 받아들인 데모토로네 부인은 페라가모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구두역사상 최초의 특허등록품이자, 1940년대까지 세계를 휩쓴 ‘웨지힐(Wedge Heel)’을 처음 신은 여인으로 기록됐으니 말이다.

역시 진정한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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