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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유통일반

독도의 ‘독’은 ‘돌’ 뜻하는 방언

독도는 이름과 달리 하나의 섬이 아닌 두 개의 큰 섬과 89개의 부속 섬으로 이루어졌다. 동도의 면적은 7만3297㎡이고, 서도의 면적은 8만8639㎡로 두 섬을 합한 독도의 면적은 18만7453㎡이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점령한 이래로 우리의 영토가 되었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우산도, 죽서도, 관음도 등을 아우르는 해상왕국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독도를 우산도ㆍ요도ㆍ삼봉도 등으로 불렀다. 삼봉도라고 부른 시기는 성종1(1470)년인데 함경도에 사는 김자주를 파견하여 섬을 관찰해보니 섬 북쪽에 세 바위가 우뚝우뚝 솟았으므로 삼봉도라고 불렀다. 조선 초기 이후에는 주민 쇄환 정책을 써서 섬을 비워 두었는데 이 틈을 이용하여 일본의 어부들이 울릉도에서 불법적으로 고기를 잡아 갔다. 이 소식을 들은 안용복은 40여 명을 이끌고 울릉도에 들어가서 일본 어부들을 몰아내고 일본까지 나아가서 일본으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에 오지 않겠다는 약속과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 땅이라는 서류까지 받아 왔다. 안용복은 독도를 자산도(子山島)라고 불렀다. 이 이후에는 3년마다 관리를 파견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였다. 정조18(1794)년에 수토관으로 파견되었던 한창국(韓昌國)은 독도를 가지도(可支島)라고 부르고 바다사자인 가지어(可支魚)를 잡아 왔다.

독도의 영유권을 확실히 한 문서는 1900년에 발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들 수 있다. 이 칙령은 울릉군의 관할 구역을 울릉 전도와 죽도(竹島)ㆍ석도(石島)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죽도는 울릉도 바로 옆의 죽서도(竹嶼島)이고 석도가 독도(獨島)이다. 우리나라의 방언에는 돌을 독이라고 발음하며, 돌섬을 “독섬”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음역하면 “독도”이고 의역하여 “석도(石島)”이기 때문이다. 우산도라고 늘 부르던 독도를 공식 문서에서 독도라고 처음 사용한 것은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서이다.

독도는 우산도, 요도, 삼봉도, 자산도, 가지도, 석도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렀지만 우리의 고유한 영토이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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