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경찰의 추적을 피해 전국을 누빈 연쇄살인범. 이 정도면 한 영화의 주연은 아니더라도 제1악당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 자격은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가 도망 중 우연히 들른 산 속 허름한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먹는 데 정신이 팔려 경찰에 체포된 뒤로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서군 감독의 ‘된장’은 인간의 정신과 오감을 뒤흔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음식의 이야기이다. 최근 몇 십 년 동안 영화 장르는 이 소재의 가능성에 집중해왔다. 음식처럼 원초적인 소재는 언제나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고, 결코 관객들에게 직접 그 음식의 맛을 보여줄 수 없다는 핸디캡은 오히려 영화 스토리와 표현의 자유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을 사로잡고, 어린 시절 병으로 잃어버린 감각을 돌려주고, 시체를 썩지 않게 보존하는 능력을 가진 이 신비스러운 식재료는 모큐멘터리에서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와 표현법을 오가며 관객들의 숨겨진 욕구를 자극하는 특별한 꿈을 선사한다.
적어도 ‘된장’은 제작자 겸 공동 각본가 장진의 신작 ‘퀴즈쇼’보다 훨씬 많은 영화적 쾌락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단지 이야기와 소재의 가능성을 고려해보면 ‘된장’이 후반부까지 숨겨두었던 진실은 평범한 편이다.
하늘을 뚫고 세상을 정복할 수도 있었을 것 같던 이야기가 도달하는 곳은 지극히 평범한 금지된 사랑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진실된 무언가를 전달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박제화된 연속극 공식에 빠져 있다.
된장의 토속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고 파괴한다는 시도는 좋지만 이요원과 이동욱의 캐스팅은 그에 걸맞은 도전정신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들이 연기하는 사람들은 그냥 연속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쁜 젊은이들일 뿐이다. 2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