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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에 더 이상 구찌는 없다

[정일환의 이야기가 있는 명품]

맨손으로 고향을 떠나 굴지의 대기업을 일으킨 창업주가 나이가 들어 회사를 장손에게 맡긴다. 왕좌를 빼앗긴 동생은 이를 못마땅히 여긴 끝에 반란을 일으킨다.

‘왕자의 난’ 속에 회사는 풍비박산 나고, 그 와중에 장손은 목숨을 잃고 만다. 정부까지 개입했지만 회사는 남의 손에 넘어가고, 창업자 일가는 회사를 떠나게 된다.

우리나라 대기업 얘기가 아니다.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 중 하나인 구찌(GUCCI)의 명품답지 못한 막장 드라마다.

구찌의 비극은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장손 마우리치오 구찌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회사를 장악한 형에 맞서 동생 파올로 구찌는 라이선스를 남발해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파올로는 무려 2만 개에 달하는 ‘짝퉁 구찌’를 만들어내 구찌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회사를 형에게 물려준 아버지를 미워한 나머지 탈세 혐의로 감옥에 보내려는 패륜까지 서슴지 않았다.

막장의 절정은 장손 마우리치오의 아내 파트라치 레지아니가 가담하면서 시작됐다. 세탁소집 딸 출신으로 구찌 가문의 극렬한 반대 속에 일약 신데렐라가 된 파트라치는 남편이 그룹 회장이 된 뒤 회사 경영에 욕심을 내다 1985년 이혼을 당하고 만다. 앙심을 품은 그녀는 “전남편을 죽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이혼 10년을 맞아 이를 실행에 옮기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1995년 3월 어느 날 아침, 출근하던 마우리치오 구찌는 누군가 쏜 4발의 총을 맞고 길에서 죽음을 맞았다. 구찌그룹 회장의 시신은 청소부에 의해 발견됐고, 파트라치는 29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보내졌다.

구찌에는 더 이상 구찌 가문 사람이 없다. 만신창이가 된 회사를 바레인의 투자기업 인베스트코프가 사들이면서 구찌 가문 사람들을 모조리 내쫓았기 때문이다. 구찌의 흔적은 창업자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GG’로고, 그리고 그가 직접 디자인한 ‘뱀부백’(사진)에 남아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찌의 전성기는 구찌 가문을 떠나면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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