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극 ‘대물’이 4회를 기점으로 급변했다. 작가와 PD가 교체된 결과인데 공식적인 이유는 제작진과의 마찰 때문이다. 황은경 작가가 먼저 하차하고 오종록 PD가 연이어 하차했는데 소문대로 외압보다는 둘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어쨌든 중요한 건 제작진 교체의 원인보다는 그 결과의 효과다. 1·2회에서 서혜림(고현정)이 정치에 입문하는 동기와 과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며 순수한 정의감을 담아냈는데 4·5회에서 그녀는 의지박약의 꼭두각시이자 공허한 정의만 주장하는 골치 아픈 후보자일 뿐이었다.
1·2회에서 다소 거친 듯 왈패 같은 성정이 보였다면 그 다음에는 그런 성격이 리더십으로 발휘되는 과정을 보였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과정이 생략되자 서혜림의 캐릭터는 분산된다.
하지만 문제는 서혜림뿐만이 아니다. 하도야(권상우)와 강태산(차인표) 역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각자의 정의감이 아니라 서혜림의 당선을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도대체 왜?) 캐릭터로 변하며 급기야 납치된 서혜림을 구출하는 활극까지 선보였다.
무엇보다 ‘대물’의 좌충우돌은 캐릭터의 변화에만 있는 게 아니다. 본격 정치 극화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정치인들의 묘사가 유치하고, 선거운동과 유세의 내용 또한 1980년대 대본소 만화를 보는 듯 1차원적 접근에 머문다.
정치는 없고 활극과 액션과 멜로가 자리 잡은 이 드라마의 급격한 변화는 그래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드라마를 볼 수 없다는 절망감, 혹은 패배감을 유발한다. ‘대물’의 시청률은 여전히 3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연 그게 전부인가.
한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다룬다는 소재와 현실 정치의 이슈를 ‘보편적인 정의’의 실현으로 구현하겠다는 의지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갈등을 이유로 초반에 하차한 황은경 작가와 오종록 PD의 책임감도 문제지만 그들을 설득해서 드라마가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키지 못한 제작사 역시 큰 문제다.
이런 식의 운영은 시청자와 암묵적으로 합의된 룰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것이다. 아무리 2010년 한국이 원칙을 우습게 여기는 세상이라고 해도, 드라마에서조차 이걸 재차 확인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