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10개월의 공백이 무색하다. 4년 만에 ‘조지킬’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팬들의 기대는 그가 오랜만에 찾은 연습실에서 느낀 흥분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제대 후 복귀작으로 고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다음달 30일부터·샤롯데 씨어터)는 예매 시작 30분 만에 출연분 전회가 매진됐다. 제대 사흘째가 되던 날 오후, 조승우(31)가 깊고 짙은 목소리로 ‘지금 이 순간’을 이야기했다.
'20대 악몽' 꼬리 뗀 순간!
인터뷰가 있던 날 오전도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빴다. 서대문 경찰청사에서 열린 명예경찰관 위촉식에서 명예 순경 계급장을 받았다. 같은 시각, 티켓 예매 사이트 서버엔 불이 났다. 군에서의 추억과 배우 복귀에 대한 기대가 교차되는 이 순간이 다소 벅찬 듯 보였다.
“전역한 지 사흘짼데 벌써 옛날이 된 것처럼 이야기하게 되네요. 군에서 많은 성취감을 느꼈어요. 제대 2주 전인가? 면도하면서 거울을 보는데 ‘조승우, 못해낼 줄 알았는데 참 대견스럽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20대의 악몽은 군대 가는 꿈이라잖아요. 해결하지 못한 꼬리표를 떼어 냈으니 홀가분하죠. 어떤 분들은 이제 군에 다시 가는 악몽을 꾸게 될 거라고 겁주는 데, 그건 행복한 꿈이죠. 하하.”
군 복무 기간 동안 뮤지컬계는 침체를 겪었다. 이 때문에 ‘뮤지컬계 흥행 보증수표’의 복귀는 팬들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까지 손꼽아 기다리던 빅 이슈였다. 그러나 조승우 본인은 ‘영향력 있는 배우’라는 수식어에 손사래를 쳤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영화, 뮤지컬 시장이 모두 안 좋아서 그 시기에 군에 가길 잘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돌아가서 설 자리가 없을까봐 고민한 적은 없지만 속상하더라고요. 겉치레가 커지는 모습을 보면서, 흙 속의 진주를 끄집어내는 사람은 없고, 진주에 화려한 치장만 하려 드는 것 같았거든요. 제 이름 앞에 영향력이라는 말을 꺼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남경주 선배 정도는 돼야 어울리는 수식어죠.”
다시 '지킬' 옷 입는 순간
2004년 7월 이 뮤지컬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공연장이었던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은 공연의 막이 오름과 동시에 탄성으로 묻혔고, 그는 ‘조지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대 후 복귀작으로 ‘지킬 앤 하이드’를 선택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땐 거품이 많았어요. ‘지킬 앤 하이드’ 는 출연 제의를 두 번이나 고사할 만큼, 기술적인 부분에 자신이 없었거든요. 실력은 모자란 데 작품이 주는 힘이 워낙 셌죠. 그런 상황에서 마치 제 신드롬인 양, 일이 커지는 데 그 부담을 고스란히 받을 수가 없더라고요.”
4년 만에 같은 작품에 다시 서는 만큼 팬들의 기대가 크다. 30대가 된 조승우가 과연 어떤 지킬과 하이드를 그려낼까. 그는 지킬과 하이드를 분리하는 대신 하나의 존재로 풀어내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관객들에게 잘 설명되지 않던 부분들을 강하게 어필할 수 있도록 대본 수정 작업부터 하고 있어요. 전에는 감정에 치우쳐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놓쳤어요. 그래서 성대 결절도 왔었던 거고요. 이번엔 5개월이나 무대에 서니 체력 관리도 잘해야 할 것 같아요. 적어도 무대 뒤에서 쓰려져 실려 가는 일은 없어야죠.”
200회 공연 앞둔 순간
이번에 무대에 서면 ‘지킬 앤 하이드’로만 200회 공연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많이 변했을 테지만 초연 때 가졌던 느낌을 다시 찾고 싶어요. 수많은 앵콜 공연을 하면서 슬럼프에도 빠졌고 밸런스가 무너진 적도 있었어요. 심지어 겉멋이 든 것처럼 연기한 적도 있죠. 관객의 마음으로 2년여를 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변질됐던 부분이 보이는 것 같아요.”
팬들로서는 특유의 연기력과 무대 장악력도 그립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대표하는 넘버 ‘지금 이 순간(This is moment)’을 부르는 조승우의 모습이 가장 기다려진다.
“배우로서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의미 있는 곡으로 남겠죠. 이 작품 속에서만 부르고 싶어 군 복무 중에도 주로 다른 노래만 불렀죠. 경찰청 사람들은 이 노래가 제 노래인 줄 알아요. 다른 사람이 이 노랠 부르는 걸 보고는 ‘승우야, 저작권 너한테 있는 거 아냐?’ 하더라고요. 하하.”/한제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