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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한양 천도

‘새 서울에 이르러 옛 한양부의 객사를 이궁으로 삼았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3년(1394년) 오늘의 기록이다. 한양 천도의 주역은 태조 이성계. 개경의 지력이 쇠했다는 풍수지리설에 근거, 터전을 새로 닦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셈은 개경 일대 개국공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민심도 두려웠다. 고려의 충신 최영 장군을 처형할 때 동맹 철시하고 정몽주를 흠모하던 개경을 떠나고 싶었다. 이성계에 반대해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낙향한 선비 72명이 조정출사를 재촉하며 마을을 불태우는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두문불출한 채 불타 죽은 사건도 태조의 천도 의중을 굳혔다. 한양이 도읍지로 정해진 것은 정도전의 건의에 따랐다. 한양은 조선왕조 내내 수도로 자리를 지켰다. 태조의 입경일인 10월 28일은 정도 600주년인 1994년부터 ‘서울 시민의 날’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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