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라는 제목과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연관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한번에 외워지지도 않는 제목을 떡 하니 붙인 극단 뛰다의 신작 ‘내가……’는 고전인 ‘맥베스’를 그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비교적 길고 외우기 힘든 제목이지만 공연이 끝나갈 때쯤 제목의 의미가 가슴에 새겨진다.
하얗게 분칠한 광대들이 맥베스 놀이를 한다. 그들은 간단한 분장으로 맥베스가 되고, 맥베스 부인이 되고, 또 던컨 왕이 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과 아내의 부추김에 현혹되어 왕을 암살하고 죄의식으로 파멸해 가는 영웅의 이야기다.
그러나 뛰다가 본 맥베스는 영웅이 아니다. 권력욕에 눈멀어 왕을 살해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억압하는 맥베스를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정일과 박정희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내가……’에서 맥베스는 권력에 눈먼 독재자일 뿐이다. 일렬로 늘어선 광대들의 왕관 뺏기 놀이는 허무한 권력의 말로를 보여준다. 앞선 자를 죽이고 왕관을 뺏은 자는 뒷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당한다.
그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다 마지막 남은 자는 자신도 언제가 같은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살을 하고 만다. 상징성과 메시지가 강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광대놀이로 표현되다 보니 가볍고 유쾌하다.
독재자인 맥베스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회유하고 거짓 공약과 폭력을 행사한다. 대부분이 죄가 있는 자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몇 명만 제거하면 사회가 평안해진다는 그의 요설은 혼란스러운 정치사를 가진 우리에게는 익숙한 논리다.
종이인형을 나눠주고 입장부터 무대를 거쳐 객석에 앉게 하는 등 작품은 관객들에게 말 걸기를 시도한다. 권력욕에 살인을 저지르고, 또 권력을 지키기 위해 감금하고 고문하는 맥베스를 경험하게 한다.
관객을 빤히 바라보는 광대들은 내가 그랬는데 당신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의 제목처럼 (맥베스가 그랬다고) 말하지 못한다.
권력에 눈먼 독재자를 비난하면서 그것을 침묵으로 인정하는 대중들에게도 뼈 있는 비수를 던진다. 놀이의 유쾌함 속에 침잠한 메시지는 국민의 언로를 차단하고 인정하지 않는 시대이기에 더욱 가슴에 오래 남는다. 31일까지 게릴라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