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추를 신는 순간, 넌 악마와 영혼을 거래한 거야.”
지미추(JimmyChoo) 구두와 눈이 마주친 적 있는 여성이라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이 대사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100년 넘은 브랜드가 수두룩한 명품 구두시장을 등장 10년도 안 돼 접수해버린 지미추의 원동력은 바로 대중의 ‘속물 근성’이기 때문이다.
절제라고는 찾을 수 없는 화려함. 발이 좀 아플지라도 뽐내고 주목받고 우월하고 싶은 속내의 마지막 한 줌까지 대놓고 드러내는 사치. 이것이 지미추를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고야 말’ 솔직한 이유다.
지미추는 브랜드 탄생과정부터 여타 명품과는 차별화된다. 패션 전문지 ‘보그’의 액세서리 에디터였던 타마라 멜런은 1996년 말레이시아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인 지미추를 발탁해 구두사업에 나섰다. 비달사순 공동창업자의 딸인 그녀는 지미추에게 구두 디자인과 제작에만 전념토록 하고, 자신은 대중들의 ‘연예인 따라하기’ 심리를 건드리는데 주력했다. 로맨틱 코미디 마니아라면 “이런, 내 지미추가 망가졌어!”라는 여배우의 탄식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효리 구두’, ‘고현정 가방’ 등 국내에도 일상화된 협찬의 귀재가 바로 지미추다.
타마라가 알아챈 또 하나의 속물근성은 너무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보는 여우의 속마음이었다. 지난해 이맘때쯤, 패스트패션 선두업체인 H&M의 전세계 200개 매장 앞에는 새벽부터 수백명의 여성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딱 하루 동안 지미추 구두와 가방 등을 7만∼20만원에 선착순으로 파는 이벤트 때문이었다. 지미추는 결코 신포도가 아님을 알린 셈이다.
하지만 악마와의 결탁은 불행한 결말을 불러왔다. 구두제작에만 열중하던 지미추가 상업주의에 반기를 든 것이다.
지미추는 “그들의 구두는 아무나 만들 수 있다”는 독설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이제 지미추에는 더 이상 지미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