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고 되어 있고 그렇게 늘 부르다 보니 우리나라의 영토가 3000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쉽고 또 상당수의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조선 전기 유명한 지리학자였던 양성지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우리의 국경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만이 육지에 연달아 있지만 국토의 넓이는 “만리(萬里)의 나라”라고 주장하였다. 노사신이 쓴 ‘동국여지승람’ 전문에서도 우리의 국토가 만리라고 하였고, 또 서거정도 ‘동국여지승람’ 서문에서 고려는 서북지방은 압록강은 못 넘었지만 동북지방은 선춘령(先春嶺)을 경계로 해서 고구려지역을 더 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조선 전기에는 우리나라의 영토가 만주까지 포함하는 만리라는 의식이 있었다.
역대 왕들은 구중궁궐에 있지만 지방 수령들과 국정을 논의할 때 만리를 헤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우리의 영토를 만리로 보고 있다. 세조가 이징옥이 그의 부하 손에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면서 국왕은 만리를 굽어 살피는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성종도 어유소를 삼도 체찰사로 보내면서 몸은 비록 구중궁궐에 있지만 마음은 만리의 먼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하였다. 정조 때에도 영남지방과 함경도의 곡식을 서로 나누어 쓰는데 만리가 멀지 않다고 하였다. 순조, 철종 때에도 지방관들에게 선정을 베풀 것을 부탁하면서 “만리(萬里)의 머나먼 지방의 일도 뜨락의 일처럼 환히 알 방도가 있을 것이다”라고 부탁하고 있다.
위와 같이 우리나라를 “만리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강했는데 이러한 의식으로 조선 전기에 제작된 ‘조선방역도’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고지도들이 만주지역까지 포함하여 그렸다. 우리나라는 “삼천리의 나라”가 아니라 “만리의 나라”라는 좀 더 크고 웅대한 영토의식이 필요하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