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3850질이 판매됐습니다. 역사 정의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애정이 크다는 게 확인됩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1년 전 발간된 연구소의 역작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3000쪽에 달하는 30만원짜리 고가의 사전치고는 상당한 판매량이다. 최근 3쇄까지 찍었다.
연구소는 8년여 작업 끝에 지난해 11월 효창공원 백범선생 묘소에서 ‘보고대회’를 열고 인명사전 발간을 완료했다. 사전에는 4389명의 친일·반민족 행위가 기록됐다. 반민특위 해산 60년 만에 이뤄진 역사 청산이다.
◆ 후원회원 1000명이나 늘어
조 총장은 구매자 대부분이 일반 국민이라는 데 큰 의미를 둔다. 발간 기금으로 국민 성금도 7억원이나 모였다. 발간 전 5000명 수준이던 연구소 후원 회원은 1년간 1000명이나 늘었다.
“인명사전 발간 뒤 초등학교 6학년생이 연구소를 찾아왔어요. 인명사전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3번이나 읽었다며, 왜 빨리 보유편(補遺篇·초판의 누락분을 보완)을 내지 않느냐고 재촉을 하더군요.”
조 총장은 특히 “인명사전에 자신의 할아버지 이름이 올랐지만 연구소 운영에 참여하거나 여러 방법으로 도움을 주는 친일파 후손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연구소는 인명사전 발간 이전 수차례 ‘업무방해’를 당했다. 친일파 명단 발표 등 행사 때마다 협박전화가 쇄도했고, 행사장에는 우익단체가 몰려와 폭행을 일삼기도 했지만 정작 인명사전이 발간된 뒤에는 조용하다.
“인명사전에 워낙 친일의 증거가 명백히 제시돼 있기 때문에 트집거리가 없을 겁니다. 또 그동안 후손들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도 연구소가 다 이겨왔고, 그들이 정도를 벗어난 행동을 더 하기는 힘든 상황이죠.”
연구소는 인명사전을 보다 많은 국민이 접할 수 있도록 일선 학교·공공도서관 등지에 보급하는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또 일본 등 해외 판매를 본격화한다는 복안도 세웠다. 특히 부담스러운 가격(30만원) 문제 해결책도 구상 중이다.
“국민 힘으로 만들어졌으니 더 널리 읽혀야 한다는 측면이 분명히 있죠. 그래서 일단 좀 시간은 걸리겠지만 보급용 ‘풀어쓰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계획 중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전자도서, 포털DB 등으로 대중화할 겁니다.”
◆ “재원마련 다시 한번 밀어주세요”
연구소의 다음 목표는 ‘역사관’ 건립이다. 창립 이래 18년간 수집한 일제강점기 유물 등 2000여 실물 자료를 일반에 공개해 당시의 실상을 낱낱이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재원이 문제다. 연구소는 국민 모금운동 전개를 고민 중이다.
“민간 연구소 입장에서 재원 마련에 한계가 있어요. 일단 송기인 신부께서 2년간 진실화해위원장을 지내면서 모은 급여 전액을 연구소에 기증하셨고, 여기에 인명사전 판매수익금 등을 모아서 종잣돈으로 삼으려 합니다. 국민 여러분이 인명사전을 만들어주셨으니, 역사관까지는 밀어주십사 하는 게 바람입니다.”
사진/도정환기자 doremi@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