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 훌쩍 큰 키로 서 있는 나무는 그 앞으로 탁 트인 산하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그 나무 아래에 아버지가 누워 계신다. 아버지는 이제 나무가 되신다. 사시사철의 시간이 입혀주는 옷을 그때마다 갈아입고 그 자신이 산속의 풍경과 하나가 되어 또 다른 나이가 들어가실 것이다. 그러나 그건 세월이 쌓이는 것만큼의 늙음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태어남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어느 계절도 계절은 노쇠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황토로 만든 작은 함에 담긴 아버지의 육신은 어느 새 정갈한 백색의 가루가 되었다. 숨이 멎고 체온이 차갑게 식은 후 거센 불길을 통과한 존재가 도달한 원초적인 순결함이다. 결코 허무가 아니다. 그 안에는 80 평생을 지내면서 겪었던 바람과 비, 그리고 햇볕과 달 그림자가 스며 있다. 살면서 견뎌내야 했던 시련과 무겁기만 했던 짐도, 더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승의 몸을 결박하고 있던 그 모든 곤고함의 포승을 풀어낸 뒤에 남은 완벽한 자유다. 아니더라도 굳이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의 강이 마음속 깊이 흐르지만, 영원한 시간의 문을 여신 아버지를 위한 기도가 더 큰 강을 이룬다. 생전의 목소리도, 미소도 더는 듣고 볼 수 없으나, 그리움과 추억이 그 목소리와 미소를 더욱 정겹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거두기 어려운 병색이 완연해졌어도 건강상의 이유를 물리치고 그리 즐기시던 약주 한잔 마음이나마 흡족하시도록 올리는 건데, 하는 회한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멈출 수 없는 눈물이 따라 놓은 술잔에 떨어진다. 뒤늦은 아픔이 술잔에 번진다. 인간은 누구나 이렇게 사는가?
장지(葬地)가 된 숲속에 ‘아 목동아’로 불려지는 아일랜드 민요, ‘오 대니 보이’가 은은히 울려 퍼진다. 저 목장에는 여름철이 가고 산골짝마다 눈이 덮여도 나 항상 오래 여기 살리라, 아, 목동아 내 사랑아. 이 노래는 아버지가 자신의 아우 둘과 함께 멋지게 부르시던 애창곡이다. 원곡 가사에는 ‘내가 누워 있는 곳에 와 무릎을 꿇고 나를 불러다오. 그러면 내가 들으리라,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그리도 좋다’라고 되어 있다.
마지막은 이렇다. ‘네가 오기까지 나는 이곳에서 평안히 쉬고 있으리라’. 그 절절한 기다림이 가슴을 파고든다. 아, 바쁘게 산다고 살아생전 아버지를 너무 외롭게 해드렸구나.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