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시절을 보낸 걸 그룹 멤버가 온전히 자기 힘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끌어 오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은진(30)은 자신에게 상을 줘도 될 것 같다. 연기자로 야무지게 입지를 다져온 그가 올 연말 뮤지컬과 드라마에 동시에 출격하며 존재감을 두텁게 한다.
순정파 ‘선’ 역할
짐작했던 것처럼 말투엔 확신이, 두 눈엔 자신감이 넘친다. 그가 뮤지컬 데뷔작 ‘위대한 캣츠비’(∼12월 31일 대학로 아트윈씨어터)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열에 아홉이 “도도한 페르수 역을 맡았구나”라고 한 것과 비슷한 이유다. 그가 맡은 선은 남자 주인공 캣츠비에게 사랑을 바치는 순정의 아이콘이다.
“저조차도 ‘제가 선이라고요?’라고 반문했었어요. 베이비복스 때 이미지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죠. 하긴 ‘킬러’ 때는 터프 걸의 정점까지 찍었으니. 하하. 나이 서른에도 귀여울 수 있다는 걸 보여드려야겠어요.”
애초 살짝 어둡던 작품의 톤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환해졌다. 여자 주인공이 페르수에서 선으로 옮겨지면서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진 탓이다.
“살짝 4차원에다 애교 넘치고 발랄한 캐릭터라 목소리를 한 톤 높였어요. 연예계에 발을 내디딘 지 오래됐지만 친한 사람 아니면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모습들이죠. 유쾌한 건 저랑 비슷해요.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모습도요.”
가수들의 뮤지컬 진출 시기가 점차 빨리지는 것에 비한다면 연예계 데뷔 13년 차인 그의 뮤지컬 도전은 상당히 늦은 셈이다. 정작 그는 “예상보다 빨리 무대에 서게 됐다”며 손사래를 쳤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대상은 끝까지 남겨 두는 법이잖아요. 저에겐 뮤지컬이 그랬던 것 같아요. 베이비복스 때부터 뮤지컬 제의는 많았어요. 제 성격 탓이죠.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때 시작하는 건 성격상 안 되는 일이거든요.”
열애설은 해프닝일 뿐
최근 일반인인 동갑내기와 열애설에 휩싸였다. 남녀 불문하고 쿨하게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성격 탓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대신 뮤지컬에 이어 드라마에서까지 원 없이 사랑을 하고 있다. 케이블TV 채널 SBS플러스의 드라마 ‘키스 앤 더 시티’에서 결혼은 NO, 연애는 OK인 심은진 역으로 출연 중이다.
“‘위대한 캣츠비’의 선과 ‘키스 앤 더 시티’의 심은진은 사랑관이 아주 많이 달라요. 드라마에서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꼭 제 나이대 여성들의 공감대를 툭툭 건드려야 하거든요. 각기 다른 사랑을 연기하다 보니 진짜 제 모습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가수에서 연기자로 전향한 후 ‘대조영’ ‘라이프 특별조사팀’ ‘스타의 연인’ ‘태양을 삼켜라’ ‘거상 김만덕’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하이라이트 무대를 독식하던 그때 그 시절에서는 멀어졌지만, 매번 제 몫을 해내는 데는 내심 뿌듯하다.
“열여덟에 시작해서 서른이 됐어요. 아이돌 가수에서 연기자가 됐고,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거쳐 뮤지컬까지 영역을 넓히게 됐고요. 오래 연기할 거니까, 지금 이 속도가 딱 맞는 것 같아요.”
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