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지난주 학기별 학부모 면담을 진행했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내년도 재원 갱신 여부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들 다섯 살이 되면서 어린이집에서 유치원, 그 중에서도 영어 유치원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유혹이 이 비강남지역에서도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는 모양이었다.
원장님은 열렬히 국어우선 교육의 중요성과 과다한 영어조기교육의 위험성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해주셨는데 어차피 영어 유치원은 생각도 없었던지라 그렇게 열성으로 설득해주시는 것이 되레 미안할 지경이었다.
어렸을 적 뭣도 모를 때 원어민으로부터 습득한 영어가 향후 그 아이의 영어 실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교육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기 때문에 뭐라 평가하지는 못하겠지만 단 하나 확신하는 것은 영어의 완벽한 습득이 평생 우리들의 안녕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그 아이가 3개 국어를 하든, 5개국어를 하든 그 아이의 인생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영어를 완전히 못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유리해지는 가능성을 안고 있을 뿐이다. 딱 그뿐이다.
문제는 불안함이 이 사회와 우리 마음의 기저에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안정성을 보장하는 직업이나 자격증이나 스킬에 대한 환상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영어가 그 모든 것의 상징적인 관문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어릴 적도 모자라 대학생과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그동안에 했다던 영어 공부는 대체 뭐였는지, 영어를 더 잘해야만 쓰겠다며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참 많다. 갔다 오면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하지만 영어유치원을 다녔다고 해서, 1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해서, 영어실력이 현저히 늘어나거나 그 영어 실력으로 투자 대비 효과를 뽑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정황에서 주변과 비교해봤을 때 그저 조금 더 우위에 섰다는 자기만족적 심리적 효과에 기여한 점이 더 컸다면 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