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 및 일제 강점기에 걸쳐 프랑스와 일본에 빼앗겼던 조선 왕실의 궁중 도서들이 차례로 우리 정부에 반환된다.
G20 서울 정상회의와 연이어 일본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 최종 타결한 내용이다. 해외로 약탈된 문화재를 돌려받는 반환교섭에 있어 이처럼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일본 궁내청이 보관하던 조선왕실의궤 등 희귀본 1,205권이 돌아오며, 프랑스에서도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외규장각 의궤 296권이 5년마다 계속 갱신해서 대여하는 방식으로 들어온다.
의궤는 왕실의 혼례, 장례, 잔치 등의 모습을 그림을 곁들여 소개한 것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을 만큼 소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외규장각 의궤는 정조때 설치된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병사들에 의해 약탈당한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돌려받을 것을 돌려받으면서도 우리의 입장이 그렇게 당당하지 못한 점은 자못 유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쪽 협정문만 해도 단순히 ‘한반도에서 유래한 문화재’라는 표현으로 일본이 강제로 약탈해갔다는 역사적 책임문제는 슬쩍 비켜가고 있다. 또 ‘반환’이 아니라 ‘인도’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일본이 호의를 베푸는 듯한 느낌마저 남기고 있다. 이밖에 불상, 회화, 도자기, 고분 출토품 등 민간 소유의 약탈 문화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는 사실도 찜찜하기만 하다.
프랑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우리 정부는 ‘실질적인 반환’이므로 일단 반환받으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돌아가는 모습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오는 2015년에 다른 문화재를 프랑스에 전시하도록 합의가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시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받는 직접적인 조건이라면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문화재 볼모’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이 문제는 1993년 프랑스 고속철 TGV의 한국 판매를 앞두고 당시 미테랑 대통령이 굳게 약속한 사항이기도 하다. 결국 TGV는 우리 고속철도 사업을 따냈지만 반환 약속은 지금껏 미뤄져 왔다. 더구나 반환 방침이 발표되자 프랑스 내부의 반대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 정부가 이번에도 입장을 바꿀지 은근히 걱정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