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상 위 혹은 가방 안에는 늘 아이팟이 있다. 언제든 원하는 곡을 다운로드받아 저장할 수 있고,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이팟은 일상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아이팟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깔끔한 전자음을 듣다 보면 문득 LP레코드의 잡음 섞인 한 곡에 귀 기울이고 싶을 때가 있다. 기술이 최첨단을 달릴수록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더해 가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최신 유행을 진두지휘하는 가로수길에 위치한 트래픽은 아날로그 감성이 흐르는 LP바다.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가로수길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슬로라이프’를 추구하는 공간이랄까. 1970∼80년대 음악다방 분위기가 풍기는 트래픽은 인테리어가 근사한 곳도 아니고 지하에 위치한 탓에 조금 퀴퀴한 냄새도 나지만 어쩐 일인지 낯익은 얼굴의 영화감독과 가수들의 얼굴을 종종 볼 수 있는 곳이다.
트래픽의 오너는 20살 때 짐 모리슨의 앨범을 듣고 음악에 푹 빠져 20년 넘게 LP레코드를 모은 LP콜렉터다. 성내동, 회현동 등지에서 구입한 LP레코드는 지금 1만5000장에 이른다. 바의 한 면을 빼곡히 채운 LP레코드는 팝과 가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뒤섞여 있다. 음악을 신청하는 방법도 아날로그 방식이다. 테이블마다에는 신청곡을 적을 수 있는 펜과 종이가 준비되어 있는 것. DJ가 턴테이블에 LP레코드를 올리면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신경은 온전히 한 곡에 집중하게 된다. 레코드판에 바늘이 맞닿아 내는 소리에서는 가끔 빗소리를 닮은 정겨운 잡음이 들려오기도 한다.
가로수길이 일상이라면 트래픽은 여행을 닮은 곳이다. 그래서 가로수길이 빠르게 변할수록 트래픽의 존재는 더욱 가치를 더한다.
/글·사진 윤희상(여행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