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도보 여행 문화를 확산시킨 산티아고 가는 길은 예수의 제자 아고보(스페인어로 산티아고)의 무덤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의 길이었다.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에 소개되면서 국내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일상에 지친 이들은 순례자처럼 산티아고를 향해 걸었다. 연극 ‘산티아고 가는 길’은 7년 동안 사귀었던 진과의 실연의 아픔을 안고 산티아고 길에 오른 곤과 그의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무대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곤의 애인 진이 단골로 가는 술집이 무대 중앙에 위치하고, 그 주변으로 굽이굽이 산티아고의 길이 펼쳐진다.
산티아고에서 곤은 자신이 진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로소 진을 제대로 보게 된다. 엄밀히 그것은 진이 아닌 곤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곤은 산티아고에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향해 다가간다.
곤은 산티아고 길에서 복면을 하고 기타를 치는 강선생을 만난다. 강선생은 세속적인 사랑을 과장되게 설파하고 처세에 능하고 현실적인 사람처럼 행세한다. 과장된 행동은 그가 쓴 가면처럼 위선적이다. 곤이 자신을 찾기 위해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다면 강선생은 낯선 곳에 자신을 숨기기 위해 그 길을 걷는다.
술집 공간에는 서빙을 하는 묘령의 여자 은영이 뜨개질을 하고, 진은 20년 지기 친구 연이 자신이 사귀던 유부남과 만난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싱글즈’ ‘가족의 탄생’의 작가 성기영이 희곡을 썼다. 그의 전작들처럼 극적인 사건보다는 인물과 인물들이 부닥치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극을 이끌어가는 힘이다. 산티아고에서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곤과 거짓 자신감으로 무장한 강선생이 대립하고, 진과 연이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한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규정된 법칙이 없듯, 극의 구조도 정통 방식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캐릭터와 인물들이 부닥치고 갈등하는 움직임을 살폈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다층의 관계와 감성을 건드리는 대사가 맞물려 의미는 충만해진다. 감정을 증폭시키기 위해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드라마 자체는 너무 단순했고, 노래가 감성을 건드리긴 했지만 배우들의 가창력이 노래로 감동을 주기에는 아마추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