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주커의 ‘사랑과 영혼’이 벌써 20년 전의 영화라는 것을 아시는지? 생각해보니 당시 패러디 코미디만 만들던 주커가 특별히 유명하달 것 없는 배우들을 기용해서 만든 이 호러, 로맨스, 액션, 코미디, 하이브리드 영화가 당시 얼마나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지 모르는 어린 관객들도 많을 듯하다.
모르시는 분들은 한 번 보시길. 대단한 예술영화는 아니지만 할리우드에서 만든 주류 오락 영화로서, ‘사랑과 영혼’은 모범적인 모델을 제공한다.
송승헌의 첫 일본 진출작인 ‘고스트:보이지 않는 사랑’은 바로 이 ‘사랑과 영혼’의 일본판 리메이크다. 스토리는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캐릭터 설정이 바뀌었다. 원작에서 살아남은 도예가는 여자였고 죽어서 유령이 된 쪽은 남자였다.
하지만 일본판에서 살아남은 도예가 한국인 남자이고, 죽어서 옛 연인의 주변을 맴도는 유령은 일본인 여성 사업가다. 원작에서 무시무시한 외모로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갔던 지하철 귀신은 리메이크판에서 아동 병동을 맴도는 귀여운 소녀 유령으로 변형되었다.
이 정도면 여러분은 이 일본판이 어떤 방향을 노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판은 ‘사랑과 영혼’처럼 멜로, 코미디, 호러, 액션 장르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뽑을 생각이 없다.
코미디는 짧고, 액션은 건성이며, 호러는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오로지 멜로 파트다. 그것도 원작의 미국식 멜로드라마를 일본 분위기가 나는 하늘하늘하고 애잔한 로맨스로 개조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은 원작과는 달리 허전하고 비어 보인다. 이 영화에는 우피 골드버그의 오다 메이나, 빈센트 스키아벨리의 지하철 귀신과 같은 강렬한 캐릭터가 없다. 일본식 로맨스는 어느 정도 단단한 기반 위에 서 있지만 성별이 바뀐 상황은 종종 어색하다.
아무리 외국인이고 일본어가 서툴다고 해도, 건장한 남자 주인공이 위기에 빠진 공주 노릇을 하는 걸 보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원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다른 장르들이 사라지고, 로맨스가 그 빈자리를 채울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원작 줄거리의 요약본처럼 보인다.
‘고스트:보이지 않는 사랑’은 이 영화가 타깃으로 잡은 한류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원작과 대등한 평가를 받을 만한 영화는 아니다. 25일 개봉.